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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쓰리

나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묵묵히 ‘삼’(三)!이라 발음한 뒤의 그 여운이 무엇보다 좋고, 그러니까 삼삼한 기분인데다, 또 어떤 숫자를 좋아하시나요? 와 같은 물음에 비교적 정답이 아닐까 싶은 안도감- 그렇다, 그런 안도감이 나에겐 있다. 분명, 있다. 적어도 6이나 2보다는, 이 한국 땅에서 모름지기 번듯한 대답일 거란 생각이, 나는 든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무작정 나는 3이 좋은 것이다. 무작정 내가 한국인인 것처럼, 그렇다.

그렇군.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은 3이라는 숫자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아마 당신의 부모도, 또 당신의 조부모도, 혹은 단군과, 심지어 웅녀(熊女)께서도 묵묵히 마늘을 씹으며 을 좋아하셨을지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2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건 두 사람의 지인 역시 제일 좋은 숫자는 3, 이라고 대답했다. 후회 없지? 글쎄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아무튼 번복할 기회를 한번 줄게. 그것 참… 그럼 7로 할까? 후회 안 하지? 아냐… 역시 아무래도 3인 것 같아. 3이란, 그런 숫자다.

그런데 왜 3인가? 한국인 셋이 모이면 고도리가 시작된다. 맞고도 맞고지만, 고도리는 사실 셋이 하는 게임이다. 넷일 경우 한 사람이 광을 팔고, 나머지 셋이 게임을 한다. 그것이 정석이다. 또 질세라, 한국인 셋이 모이면 스타크래프트가 시작된다. 3개의 종족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편을 가를 수 없었다면, 우리는 스타에 이토록 열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다. 이 지구에서, 우리는 스타크래프트에 열광한 유일한 민족이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를 깬다는 말도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깰 수 있는데, 왜 셋이 모여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셋은, 넷이나 다섯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모르겠다.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말의 기저에는, 첫째가 못 될 바엔 차라리 셋째가 낫다는 경험적 교훈이, 있다. 분명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포켓볼보다는 역시나 스리 쿠션을 우리는 사랑하고, 예비군들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삼치기에 몰두하고, 우리의 승부는 유독, 3판2승제이며, 뭘 해도 삼세번에, 중국인들보다 더, <삼국지>를 사랑한다. 성공한 작가들은 마치 약속처럼 <삼국지>를 쓴다. 쓰고, 뒤질세라 전집으로, 12권 세트로 낸다, 발간한다. <삼국지>를 쓰고, 노래방에서 <마이웨이>를 부른다면, 한국에선 어지간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엔드 나우, 디 엔드 이즈 니어.

3은 조화를 상징한다고 하며, 삼각은 가장 안정적인 구도이자 구조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은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다.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삼한과 삼국이 있었고, 마치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처럼, 다시 이곳은 전라와 경상, 충청으로 나뉜 느낌이다. 정치는 3金이 나눠먹었고, 방송은 3사가 도맡아 하며, 국회는 늘 3당이 모여 지지고 볶고, 해치우는 곳이었다. 탄핵 역시, 마치 접시를 깨트리듯 3당이 모여 이루어낸 합작이었다. 우리의 은- 그래서 은폐요, 거래요, 협잡이자 묵인이며, 불균형의 조화이자, 불평등의 안정이었다. 통일 한국은 없었다. 3으로 나누고 3으로 나눠먹는, 3개의 종족이 살고 있을 뿐이다. 누가, 엘리를 끊었는가?

셋이면 뭐든지 할 수 있고, 셋이면 모든 게 어물쩍 넘어간다. 이 땅의 3은, 그래서 마치 얼치기 힙합 싱어가 말문이 막힐 때 무조건 갖다붙이는 <요!> 같기도 하다. 그래서, 요! 대한민국이 3류인 까닭은, 실은 3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간단한 이유라고 생각하니, 무척 삐리리하고, 삼삼해 YO!

박민규/무규칙이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