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가 알았던 케빈 스미스는 여기까지다. 지적이며 전복적인 코믹 애정극 <체이싱 아미>나 “이 영화에서 도덕이나 교훈은 기대하지 마라”고 못 박았던 <제이 앤 사일런트 밥>과 달리 <저지걸>은 교훈 섞인, 따뜻한 감동의 가족드라마임을 감추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게 만든 갓난아기를 ‘웬수처럼’ 대하고,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뉴욕 최고의 홍보맨에서 쫓겨나는 실수를 저지르는 초반의 상황들이 ‘어쩌려고’ 하는 긴장감을 주는 것도 잠시다. 어느 순간, 올리는 7년 만에 찾아온 뉴욕 재진출의 기회를 박차고 ‘시골’ 뉴저지에 처박혀 딸을 위해 헌신하는 아빠가 됐다. 껄끄러운 건 그의 선택이라기보다 이를 풀어가는 설교조다. 카메오 출연하는 윌 스미스의 입담을 빌려서까지. <도그마>에서 “신에게도 유머감각은 있다”며 성경 갖고 장난치던 그의 반항기 어린 익살은 어디로 간 걸까?
딸과 엮어가는 설교조의 인생 구원극, <저지걸>
글
이성욱(<팝툰> 편집장)
2004-04-07
최고의 직장과 사랑스런 아내를 잃어버리게 한 딸과 엮어가는 인생 구원극
<아이 엠 샘>에서 7살의 지능을 가진 아버지 샘(숀 펜)은 자신보다 똑똑한 7살의 딸 때문에 혹독한 곤경에 처한다. <저지걸>의 아버지 올리(벤 애플렉)도 7살이 된 딸 거티와 함께 인생 역전극을 꿈꾸다 ‘구원’받는다. 지능이 7살에 머문다 해도 샘의 몸은 건장한 어른이다. <아이 엠 샘>은 위대한 부성애에 몰두하느라 그랬는지 그에게 성욕의 문제를 제거했다. 올리는 좀 다르다. 거티와 함께 비디오점에 간 그는 딸이 아동용을 고르는 사이 자신은 성인용을 집어드는 남자 어른의 솔직함을 보여준다. 딸과 함께 포르노를 빌리러 온 아버지를 흥미롭게 본 점원 마야(리브 타일러)가 마지막으로 섹스한 게 언제인지 묻는다. “7년 동안 안 했는데요….” 연민에 빠진 마야가 즉각 “당신 집으로 가자”고 한다. 섹스하러. 딸을 낳는 순간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아내(제니퍼 로페즈)를 잊지 못해 홀아비를 고집하던 그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순간이다. 좀 기가 막히지만 이런 게 케빈 스미스 감독의 어법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발표 시간을 갖는 학예회에서도 엽기적 순간을 연출한다. 다른 팀들이 모두 브로드웨이를 석권한 뮤지컬 <캣츠>를 따라하느라 바쁜 와중에 올리와 거티는 경쾌히 노래부르며 이발소 손님의 목을 그어버린 뒤 그의 몸뚱이로 음식을 만드는 뮤지컬을 재연한다. 오프브로드웨이의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학예회장은 쥐죽은 듯 침묵에 빠졌다가 잠시 뒤에야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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