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주말극장가] 나른한 늑대냐, 고난의 예수냐

4월 첫 주말, 개봉작 가운데 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영화가 있다. 양동근, 황정민 주연의 <마지막 늑대>는 계절과 무관한 내용이지만 봄 기운처럼 온 몸을 감싸는 나른함이 친근하게 전해지는 영화다. 한 형사가 험악한 서울에서 범인을 잡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 추운 겨울에 달리는 차에 매달리고, 연휴로 전원을 꺼버린 엘리베이터 안에 사흘 동안 갇힌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면서 일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는 강원도 정선군의 한적한 산골 마을 파출소로 전근간다.

서울서의 고생담을 다룬 짧은 도입부를 지나 화면 가득 펼쳐지는 강원도 숲속에는 봄 햇살이 가득하다. 이 형사는 그 안에서 돗자리 깔고 자고, 깨어나면 동식물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일에 시달리며 시간에 끌려가지 않고, 시간을 좋게 써보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시간과 친구가 돼 함께 흘러가는 그 나른한 모습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세상은 일하지 않는 자를 놓아두지 않는다. 파출소 폐쇄방침이 발표되고 이 형사는 일부러 사건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후반부 이야기 전개가 맥이 좀 풀리지만 영화가 풍기는 나른함이 신선하다. 아! 일하기 싫어서 슬픈 짐승, 인간이여.

2일 개봉영화 중 가장 화제작은 배우 멜 깁슨이 감독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이다. 예매순위가 압도적으로 1위에 올라 있는 걸 보면(맥스무비 집계) 미국에서의 흥행세가 한국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12시간을 따라가는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 예수가 겪는 육체적 고통을 중계하는 데에 주력한다. 매맞아 찢어지는 피부, 떨어져나가는 살점, 흐르는 피를 2시간 넘게 보면서 예수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에겐 복음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지겹고 고통스런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김래원, 문근영 두 청춘 스타를 내세운 <어린 신부>는 정반대로 아주 가볍다. 팬시상품처럼 두 스타의 매력을 전시하고 소비하면서 이들의 팬을 유혹한다. 이것도 영화라는 매체의 한 특장일 수 있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의 그외 주말 개봉작 리뷰

소심남이 화끈녀를 만났을때, <폴리와 함께>

30년 가까이 다른 환경에서 자신을 삶을 구축해온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는 건 사실 ‘사건’이다. 길거리의 보도블럭만큼이나 흔해빠진 게 연애이고, 넘쳐나는 게 로맨스 영화지만 누구나 한번은 빠져봤을 사랑,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탓이다.

근사한 데이트, 짜릿한 키스의 순간이 지나가면 한두가지씩 드러나는 상대방과 나의 차이점들,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상대방의 생활습관이나 사고방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제 사랑은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라 정글 속을 헤쳐나가는 듯한 모험과 전투로 변모한다.

해리와 샐리가 그랬듯, 모든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들도 비슷한 고민을 해왔고, 손잡고 같이 영화를 보는 커플 관객도 예외는 아니다. 잘나가는 남녀들이 모여들어 사랑의 화살표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뉴욕의 두 청춘 루벤(벤 스틸러)과 폴리(제니퍼 애니스톤)도 마찬가지.

익숙한 줄거리 그렇고 그런 웃음, 애니스턴 신선한 매력이 위안

유능한 보험회사 손해사정인인 루벤은 모든 선택을 하는 데 위험도와 안전도를 계산해서 결정하는 소심남이다. 딴에는 완벽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아내가 신혼여행때 스쿠버 강사와 바람이 나자 루벤은 충격을 받는다. 더욱 움츠러든 그는 친구에게 이끌려 간 파티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폴리를 만나고 자신보다 더 모범생이었던 폴리가 분방한 히피처럼 변한 모습에 호기심을 느껴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러나 폴리가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루벤은 복통을 일으키고, 폴리가 즐기는 살사춤 클럽에 가서 루벤은 그 ‘대담함’에 아연해진다. 길거리에 떨어뜨린 초콜렛을 툭툭 털어 다시 입에 집어넣는 여자와 술집 땅콩은 지저분하다고 건드리지도 않는 남자, 그 둘은 과연 ‘사랑’이라는 지뢰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당연히 답은 ‘살아남는다’다. <폴리와 함께>는 이미 검증된 줄거리와 웃음의 코드로 엮어가는 안전한 로맨틱 코미디이므로. 익숙한 이야기, 익숙한 인물들임에도 본 영화 또 보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면, 이는 제니퍼 애니스톤의 세련된 옷차림과 아직 영화에서는 많이 노출되지 않았던 매력 때문이다. 애니스톤은 지나치게 소년 같고 어리광 심한 멕 라이언보다는 성숙해 보이고, 자기도취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산드라 블럭보다는 담백하다. 그러나 루벤 역의 벤 스틸러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웃음제조기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만 식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메리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의 테드와 <미트 페어런츠>의 그렉에 이어 이 영화의 루벤역으로 벤 스틸러는 도시적인 소심남 역할로 자신의 캐릭터를 굳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밥의 그 나물 같은 지루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한물 간 배우로 루벤의 친구를 연기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과 느끼하기 짝이 없는 직장 상사를 연기한 알렉 볼드윈의 연기가 오히려 더 신선하고 즐겁다. 2일 개봉.

“맙소사, 내가 남편을 죽였다니…”헬리 베리 주연 ‘고티카’

<매트릭스> 시리즈를 제작한 조엘 실버와 <증오>로 27살에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마티유 카소비츠, 그리고 <몬스터 볼>로 흑인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할리 베리가 한 작품에서 만났다. 적어도 라인업으로 보자면 한번 더 눈길을 끌게 하는 모양새지만 <고티카>는 결과적으로 매우 평범해져버린 공포영화다.

정신과 의사인 미란다(할리 베리)는 남편이 소장으로 있는 여성 감호소에서 범죄자들의 정신상담을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운전 중에 불쑥 나타난 소녀를 피하려다 사고를 내고 의식을 잃는다. 며칠 뒤 무거운 통증 속에서 눈을 떠보니 감호소의 독방에 갇혀있는 자신을 발견한 미란다는 3일 전 남편이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 지난 3일은 깨끗이 지워져 있다.

<고티카>는 조엘 실버와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등을 감독했 로버트 저메키스가 함께 만든 공포영화 전문제작사 ‘다크 캐슬’의 네번째 작품이다. <고티카>는 다크 캐슬의 전작들보다 많은 욕심을 가지고 출발한 듯하다.

<헌티드 힐> <고스트쉽> 등 전작들에서 자주 등장하던 유령이야기에 사이코 스릴러라는 장르를 더하고 여기에 망자의 원한이라는 동양적 정서까지 접목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 접합점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아서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행동에 충분한 원인이 제공되지 않는다. 주인공 할리 베리의 연기는 무난하다고 해도 비중있는 조역인 페넬로페 크루즈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시종 사건의 중심에서 떨어져 변죽만 울린다. 그러다 보니 공포영화의 기본요소라고 할 긴장감의 밀도가 옅어지고, 모든 사건이 동양 귀신과 서양 사이코의 합작품이라는 결론도 어색하기만 하다. 2일 개봉

프리키 프라이데이

<프리키 프라이데이>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코미디다. 몸이 바뀐 인물, 거기에서 오는 혼란으로 벌어지는 황당한 에피소드들, 한국 영화 <체인지>에서 톰 행크스 주연의 <빅>까지 우연히 벌어진 ‘몸 따로 마음 따로’를 소재로 삼아온 영화는 드물지 않다.

<프리키 프라이데이>에서 바뀐 건 24시간 전쟁 중인 엄마와 딸이다. 보수적이며 유능한 심리치료사 테스(제이미 리 커티스)와 공부에는 관심없는 록밴드 기타리스트 애나(린제이 로한)는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녀다. 이들의 사이를 중재하려는 신의 뜻인지 어느날 중국식당에서 열어본 행운의 쿠키의 쪽지에 알듯 모를듯한 암시가 적혀있고 그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두 사람의 몸은 바뀌어 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사무실과 교실이라는 서로의 공간에서 엉뚱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몸바뀐 엄마와 딸, 야릇한 사랑전선

여기까지는 매우 상투적으로 흘러가지만 두 사람이 각자의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사랑에 빠지는 전개는 자못 신선하다. 애나가 좋아하던 남자친구 제이크는 모녀의 몸이 바뀌기 전, 엉뚱하게 엄마 테스에게 호기심을 가진다. 이 호기심이 몸이 바뀐 뒤까지 이어져 결국 엄마의 몸 속에 들어간 애나와 사랑에 빠진다. 내용은 10대 두 남녀지만 형식은 40대 중년여성과 10대 소년이니 둘이 하는 키스는 뭔가 야릇한 긴장감과 웃음을 준다.

재혼을 앞둔 테스의 약혼자 라이언이 테스, 그러나 속 내용은 10대인 애나를 껴안으며 성적인 요구를 하는 것도 야릇하기는 마찬가지. 이야기 전개는 단순하고 평이하지만 천방지축인 10대를 연기하는 제이미 리 커티스의 몸따로, 행동따로를 보면 웃음을 참기 힘들다. 능청맞게 ‘꼰대’를 연기하는 어린 배우 린제이 로한의 연기도 준수한 편. 4월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