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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머레이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뒤틀린 중년의 품위 그려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스칼렛 요한슨의 둔부를 탐닉하듯 관조하는 오달리스크풍(역주: 터키 궁중의 시녀들을 그린 나체화)의 화면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빌 머레이의 영화라고밖에 볼 수 없다. 다른 어떤 배우도 그만큼 훌륭하게 뒤틀리고 상처받은 중년의 품위를 연기해내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이 오히려 무색하다고나 할까?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에서 감독 소피아 코폴라는 빌 머레이에게 마음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그녀의 선택은 어릿광대와도 같이 우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빌 머레이의 탁월한 캐릭터로 보상받았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빌 머레이는 마치 현실 속의 자기 자신과도 같은 미국의 영화스타 밥 해리스 역을 맡았는데, 그는 여느 스타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재빨리 산토리 위스키 광고를 한편 찍고 손쉽게 200만∼300만달러쯤 챙겨갈 심산으로 도쿄에 들른 참이다. 황량한 하얏트호텔에 외로이 남겨진 밥은 우연히 마주친 샬롯(스칼렛 요한슨)에게서 묘한 우정을 느끼게 되는데, 잘 나가는 연예 사진작가인 남편과 함께 도쿄에 온 그녀는 일로 바쁜 남편과 달리 종일 자기만의 몽상에 잠겨 밥보다도 더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주위의 세계로부터 동떨어진 듯한 두 사람에 비해 팩스 전문이나 전화 속의 목소리로 등장하는 밥의 아내는 현실 속의 엄연한 삶의 원칙을 대변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그 공간 자체가 엄청난 기세로 ‘탈중심화’(脫中心化)되어가고 있는 메트로폴리스 도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엉뚱한 곳에 엉뚱하게 놓인’ 인물들의 상황에 대한 코미디이다. 주인공 밥은 일본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이 소용돌이치는 기호의 정글 속에서 때때로 ‘탈자기화’(脫自己化)된 광고 속의 자기를 마주치게 된다. 가히 행사에 가까운 격식의 비즈니스 미팅과 호텔 방의 자동 커튼, 종잡을 수 없는 광기로 가득한 TV프로, 감각의 과부화를 불러일으키는 시부야의 거리 등 무한에 가까운 오해의 가능성들 속에서 어리둥절해 하는 그는 한마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 셈이다. 이처럼 코폴라 감독은 크리스 마르케가 <태양없이>(Sans Soleil)를 만든 이래 문화적 이방인들이 적립해온 일본의 타자성(他者性)에 대한 영화적 마일리지를 한껏 소진하고 있다.

고만고만한 키의 샐러리맨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속에서 우뚝 솟은 밥의 모습은 일종의 소외된 단독자의 형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본식 영어 말장난이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밥이 홍보를 위해서 출연하는 미치광이 토크쇼 장면은 (애써 사양하려는 그의 모습과 대비되어) 가히 영화의 압권이다. 주인공 밥은 언제나 지친 듯하지만 유쾌하고 영리하게 행동하는데, 빌 머레이는 이 역할을 위해서 자기만의 대본이라도 준비해놓은 것 같다. 반면 샬롯은 초현실주의적 작품의 여주인공인 양 도시를 배회한다. 코폴라 감독은 밥과 샬롯을 오가며 다소 익살스럽게 느껴지게끔 두 인물의 상황을 병치시키는데 이는 약간 가벼운 버전의 짐 자무시식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들의 경로는 우스꽝스러운 여가수의 모습을 사이에 두고 눈빛을 나누었던 호텔 바에서 매번 교차한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과도하게 시각적인 재기를 부리고 있지만,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결코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다. 두 주인공 밥과 샬롯은 모두 시차적응에 실패한 채 불면에 시달리고 있고, 그들에게 도쿄는 꿈이나 다름없다. 두 사람 모두 본질적으로 관찰자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두 사람이 만나게 되자 둘 사이에서 반복되는 대사들이 ‘공통된 언어로 소통하는’ 느낌의 흥분을 자아내게 된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시적이고 감동적이며 적당히 혼란스럽다. 영화를 통해 코폴라 감독은 자신이 영화적 혜안과 유명 인사들의 삶에 대한 나름의 견해, 그리고 밤의 유흥문화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밥과 샬롯은 샬롯이 클럽에서 알게 된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그 절정인 가라오케신에서 밥은 (우습기도 하지만) 을 부르다가 (샬롯이 색다른 느낌의 핑크빛 가발을 걸치고 나타날 때쯤) 드디어 마음이 미어지도록 록시 뮤직의 를 열창한다. 밥과 샬롯은 이 우정을 통해 각자가 자기 스스로임을 유지하면서 (코폴라 감독의 의도대로) 미리 배제되어버린 사랑의 기회를 은밀히 확인한다(이같은 영화의 섬세한 감성은 가장 미묘한 감정의 교감을 구현했던 일본 감독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헌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련하도록 자연스러운 스칼렛 요한슨은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도 다소 나이든 배역을 연기했는데, 그 캐릭터의 생생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은 숙달된 자신의 마스크 뒤에서 그녀를 동경하는 밥의 모습에 반사되어 마음속으로 저며오는 순수함을 자아낸다. 감독이 의도한 바대로 수시로 야릇한 옷차림으로 만나게 되는 둘 사이에 성적인 긴장이 고조되지만 (밥은 언제라도 준비되어 있는 듯하고 샬롯은 호기심 어려 보인다), 여기서 섹스는 다른 무언가로 대체된다. 두 사람은 호텔을 배회하고 TV를 보다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각자 스스로 만든 오해로 난처해한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어떻게 헤어질 것인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 이후 미국의 로맨스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달콤쌉싸름한 짧은 만남이라는 이야기 패턴을 따르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냉정한 감상을 부여한다. 코폴라 감독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끼리의 하룻밤 사랑에 대한 감정적인 매혹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보다는 영화라는 표현 양식의 마력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는 듯하다. 별은 밤중에나 빛나는 법. 한낮의 차가운 광선 속에서 (그들의 개인화된 연기의 양식이 그러하기도 하거니와) 슬픈 중년의 남성과 거칠 것 없는 젊은 여인이 서로를 그토록 깊이 느낀다는 것은 언뜻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수록 전율로 소름이 돋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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