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 예고편 완전정복 [2] - 유형별로 보기
김수경 2004-03-26

스타일은 달라도 주제는

형식과 내용을 교차하며 유형별로 보기

영화제작에서 마케팅의 영역에 속하는 예고편은 자신의 아버지인 광고처럼 ‘순간’의 예술이다. 다른 아버지인 영화의 본편은 가끔 자신을 떠올려주는 팬이나 다른 채널에 의해 뒤늦게 부활하고 복권되지만 예고편은 사람들이 본편을 기다리는 정해진 순간에만 자신을 드러내고 본편이 개봉되면 기억에서조차 말끔히 사라진다. 예고편을 제작하는 전문가들도 최근의 예고편들을 주로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예고편의 숙명에서 비롯된다.

“할리우드에서도 극소수의 티저를 제외하면, 예고편 개별 제작은 없다”라고 자탄하는 한 예고편 감독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자기 부정이 기묘하게 섞여 있다. CF 감독, 예고편 전문 감독, 본 영화의 조감독, 영화감독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방법론으로 연출하는 한국영화의 예고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인 현대 한국영화처럼 강한 개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과잉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러한 활발하고 다양한 예고편 제작활동은 한국영화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영화와 광고 사이를 오가는” 광고영화 혹은 영화광고인 예고편이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드러내는지 궁금하다. 그들의 형식과 내용을 교차하며 유형별로 살펴본다.

1. 연출예고편-‘색다름’으로 눈길 잡는다

영화 속 이미지를 활용한 연출예고편 <시월애>

연출 예고편이란 말 그대로 새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다. 본편의 새로운 편집 버전이라는 예고편의 기본 개념을 처음부터 재설정하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시도가 본 예고편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티저 예고편의 경우에는 이러한 연출 예고편 유형이 위력이 발휘하는 경우가 잦다. 티저의 전략은 최대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내러티브보다는 형식이나 이미지에 치중하는 방식이 주가 된다.

2004년 벽두에 떠오른 가장 참신한 예고편은 괴력의 <실미도>도 <태극기 휘날리며>도 아닌 <홍반장> 티저 예고편이다. <홍반장> 티저는 한국영화 예고편의 현재 경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잘 표현했다. 홍반장의 과거를 친구에게 듣는 여주인공의 본편 내용을 〈X파일> 형식과 결합하여 효과적인 구성을 끌어냈다. <내사랑 싸가지>의 예고편이 여주인공 하지원을 활용해 TV드라마 <다모>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연출 예고편의 본격적인 출연을 알린 작품은 <시월애>다. 배우화보집을 연상시키는 이정재와 전지현 버전의 티저 예고편은 TTL로 잘 알려진 광고감독 박명천에 의해 연출되었다. 이미지즘을 극대화하고 내러티브를 최소화하는 방법론은 본편의 서정적 비주얼과도 적절히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H> 티저의 경우 찬반이 분분했던 작품이다. 개와 소녀를 다룬 이미지 구성에 대한 찬사와 함께 “영화의 내용과 전혀 무관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연출 예고편은 대체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러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행하고 있는 나라가 드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불필요하거나 감정과잉”이라는 비판이 있고 “관객을 기만하는” 과도한 마케팅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반대로, 갈수록 중요해지는 예고편의 차별화라는 부분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영화를 가장 이슈화하기 효과적인 방법론이며, 그래서 현재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양한 예고편 제작이 가능해진다는 부분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지점이다.

해당작품 <홍반장>(티저), 〈H>(티저), <싱글즈>(티저, 메인), <말죽거리 잔혹사>(티저), <인디안 썸머>, <내사랑 싸가지>, <목포는 항구다>, <시월애>(이정재, 전지현 편)

2. 애니메이션 예고편-아기자기한 캐릭터로 ‘쥑인다’

애니메이션에 속하는 카툰 느낌의 그림들을 배치한 <어린 신부> 예고편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관객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애니메이션 예고편은 현재 전편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하기보다는 부분적인 소스로 이용하는 경우가 잦다. 클레이메이션을 전면에 사용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주유소 습격사건>의 경우처럼 애니메이션의 비중을 높인 작품들은 대체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끌어냈던 것으로 평가된다. 마케팅 면에서 본다면, 이러한 이슈화의 사례들은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예고편 전략으로 제고될 수 있다. “캐릭터를 중시하는 현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방향”을 고려한다면 애니메이션 예고편은 가능성 있는 선택으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어린 신부>의 티저 예고편이 애니메이션에 속하는 카툰 느낌의 그림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예고편의 장점은 배우 중심이 아닌 작품 중심일 경우 작품의 컨셉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주유소 습격사건>이 3∼4명의 다수 주인공을 대상으로 하는 텍스트라는 점은 그런 면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예고편 포맷과 잘 부합되는 측면이 있다. 전체 이용가의 영화라면 한번쯤 고려해볼 만한 예고편 제작방식이다.

해당작품 <처녀들의 저녁식사>, <주유소 습격사건>, <어린 신부>, <맹부삼천지교>

3. 뮤직비디오 예고편-짜릿한 혹은 부드러운 선율로 감싼다

뮤직비디오처럼 구성됐던 <와니와 준하> 예고편

예고편의 영역에서 개별적인 분야로 뮤직비디오가 존재하지만, 티저 예고편이 강화되고 음악선곡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경향에 따라 뮤직비디오 유형의 예고편들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하류인생> 티저 예고편은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기타 독주의 결합을 통해 이미지와 사운드만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실험적인 경향을 선보였다. 오노 리사의 〈I wish your love>가 삽입된 <와니와 준하>의 경우에는 “이게 뮤직비디오지 예고편이냐”며 제작투자자들이 난색을 표명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에 여러 편의 CF에 같은 음악이 삽입되는 파급효과를 낳았고, 뮤직비디오 경향의 예고편이 한 흐름으로 자리잡게 했다. <지구를 지켜라!> 예고편 경우에도 록밴드의 흥얼거리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의 리메이크 버전이 주요 대사가 등장하는 경우에만 소리가 작아지고 시종일관 예고편을 수놓는다. 이러한 뮤직비디오와 본 예고편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은 주요 관객이 같은 방식의 드라마타이즈라도 뮤직비디오 형식을 더 선호하고 뮤직비디오 채널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해당작품 <와니와 준하>, <하류인생>, <지구를 지켜라!>

4. 내레이션 예고편-말 한마디에 관객을 부른다

할리우드식 내레이션을 코믹하게 활용한 <은장도> 예고편

예고편에서 내레이션은 한국영화에서 ‘양날의 검’이다. 할리우드영화 예고편의 트레이드 마크인 내레이션은 비주얼의 강화와 효과적인 정보전달이라는 장점과 함께 영화의 느낌을 고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약점을 지닌다. 한국영화 예고편에서 내레이션의 사용은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도록 하거나 값싼 영화”로 인식하게 하는 위험부담을 안는다. <낭만자객>의 영어 내레이션의 사용이나 <어깨동무> 초반부의 중국어 버전 내레이션은 코미디영화 장르에 알맞게 쓰인 효과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CG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내레이션의 과도한 사용은 마케팅을 극대화하는 효과는 있지만, 관객에게 부담감을 줄 수도 있다는 냉정한 자기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람의 전설>의 경우 티저 예고편에서는 내레이션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예고편 본편에서는 과감히 후반부를 음악 중심으로 바꾸는 선택을 해 결과는 긍정적인 것으로 예상된다. <역전에 산다>는 방송프로그램 포맷을 빌려 전창걸을 화자로 내세우는 패러디 전략을 택했다. 영화정보 프로그램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부분과 코미디 장르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시도였다고 본다. 비주얼이 강조될수록 내레이션에 대한 시험은 여러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전문 성우의 영역이 확보된다면, 현재의 혼란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과장된 효과를 노리기보다는 작품의 성격을 감안한 내레이션의 사용이 필요하다. 액션 대작의 경우에 산만함을 줄이는 요소로 내레이션 도입이 고려될 수 있다.

해당작품 <낭만자객>, <은장도>, <역전에 산다>, <어깨동무>, <바람의 전설>

5. 내러티브 중심의 기존 예고편-편집의 힘

CG와 음악의 과감한 사용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구를 지켜라!> 예고편

가장 많은 예고편이 이 영역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 유형에서 훌륭한 예고편으로 평가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전부 영화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편집이나 사운드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친구>의 경우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을 통한 화면 감각을 전반부에 내세우면서 흑백의 비내리는 장면들을 ‘죽음’의 암시로 배치한다. 이후에는 스틸이 넘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가파른 편집을 통해 속도감을 재현하는 방법을 구사한다. 사운드와 비주얼의 분리와 병합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구를 지켜라!> 티저 예고편의 경우 전반부는 클래식에 속하는 대작 SF의 분위기를 CG로 구성하고 우주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내부에서 영화내용을 전개시키는 대목에서는 록음악과 편집으로만 끝까지 밀어붙인다. 신하균과 백윤식이 내뱉는 대사는 단 두 마디. “고향이 안드로메다 아니십니까?”라는 질문과 “뭐라구?”라는 대답. 예고편 전문가들이 꼽는 탁월한 작품인 <살인의 추억>은 티저에서는 술집신을 메인으로 하여 다른 주요 장면들을 교차편집하고, 예고편 본편에서는 향숙이를 묘사하는 백광호의 대사가 내레이션처럼 깔리고, 영상이 흘러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 예고편의 탁월한 점은 대사나 사운드가 장면과 장면 사이를 걸치도록 편집하여 “공포나 호기심을 점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코스CF로 유명한 채은택 감독이 연출했다. 다큐멘터리적 시작과 뮤직비디오 타입의 중반부로 연결되는 <올드보이>도 비주얼을 탁월하게 사용한 사례로 평가된다. 간결한 문자화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액션신의 편집을 어느 영화보다 잘 구성해낸 <청풍명월>과 같은 대작 예고편이 있다.

해당작품 <친구>, <지구를 지켜라!>(티저),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청풍명월>

6. 그외 주목할 만한 시선

그외 주목할 만한 작품들로는 내러티브에 충실한 예고편과는 달리 스탭들의 연속적인 인터뷰를 통해 구성된 <태극기 휘날리며>의 티저 예고편과 간결한 문자화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액션신의 편집을 어느 영화보다 잘 구성해낸 <청풍명월>과 같은 대작 예고편이 있다. 강렬한 느낌의 주인공 장동건 스틸을 전면에 배치하여 정사진의 고립된 느낌을 잘 표현한 <해안선>이나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사운드소스와 비주얼의 조합만으로 대사없이 공포감을 정교하게 표현한 <거미숲> 티저 예고편도 장르나 작품의 성격을 잘 살려낸 사례라 할 수 있다.

:: <내츄럴시티> 칸느 프로모션용 예고편 제작스토리

말이 5개월이지, 장편을 만드는 악전고투로세-<내츄럴 시티> 예고편

<내츄럴시티>의 예고편은 본편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작품이다. 프로모션용 예고편의 제작기간을 묻는 질문에 최승원 감독은 “한 5개월쯤”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필름마켓에 내보내야 하는 촉박한 일정과 일반적인 키네코 작업이 아니라 풀스캔으로 진행된 까다로운 공정은 제작팀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 거대하게 기획된 영화의 본편만큼 예고편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기획되었고, 그에 준하는 지난한 수정 과정을 거쳤다. 일반적으로 티저는 2달 전, 예고편은 1달 전이라는 제작관행과는 무관하게 길이만 짧을 뿐 상업 장편영화를 만드는 악전고투가 계속되었다. 이재진 음악감독의 추천으로 이 작업에 참여한 오케스트레이션 전문가 김명종씨는 “만들어진 영상에 음을 하나하나 입히는” 극한의 노력을 요하는 작업을 묵묵히 수행했다. 현재 튜브 영상제작팀 팀장으로 있는 신현찬 PD는 두 사람과 영진위 녹음실을 뛰어다니며 발을 동동 굴렀다. 최승원 감독이 보여준 <내츄럴시티> 칸느 버전은 장중한 영어 내레이션이 적절히 사용되고 특유의 절제된 편집으로 비주얼이 특화된 훌륭한 예고편이었다. 이러한 산고 끝에 만들어진 작품은 마켓에서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상당한 호평과 긍정적 평가를 얻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브영상팀과 제작투자주체간의 의견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츄럴시티> 예고편 본편은 남화정씨가 제작하게 된다. 자신의 손으로 <내츄럴시티> 예고편을 마무리짓지 못한 아쉬움은 누구보다도 최 감독이 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