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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파이>의 아류, <아메리칸 러브홀릭>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 남자가 100명의 독신녀 소굴에서 펼치는 짝찾기 모험담

원제가 ‘100명의 여인들’인 이 영화는 〈8명의 여인들>을 십수배 확대한 유럽영화가 아니라 ‘아메리칸’으로 시작하는 미국영화라는 걸 번역제목으로 친절히 일러주고 있다. 그렇다고 <아메리칸 뷰티>나 <아메리칸 스플렌더> 같은 만만찮은 미국 해부 영화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아메리칸 러브홀릭>은 <아메리칸 스윗하트>의 달콤함에 <아메리칸 파이>의 방정맞음을 한 단계 낮은 수준에서 짬뽕한 섹시 로맨틱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렌디피티>의 운명론적 설정이 신선함보다 억지스러움만 돋보이는 방식으로 덧붙는다. 미술학원에서 쫓겨나고 여자친구에게 퇴짜맞은 샘(채드 도넬라)은 돌연히 나타난 미모의 호프(에린 바틀렛)에 넋을 뺏기는데, 손바닥에 적힌 그녀의 전화번호는 빗물에 씻겨버리고 만다. 동네방네 뒤진 끝에 호프를 찾아내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우울함만 가득하다. 샘은 그녀가 사는 독신녀 아파트를 들락거리며 호프의 미소를 되찾아주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처음부터 주인공을 순정파로 못 박긴 하지만, 이 영화가 <아메리칸 파이>의 아류일 수밖에 없는 건 미국 특유의 시트콤 같은 분위기 속에 온갖 섹슈얼 플레이와 화장실 유머를 버무리기 때문이다. 음부와 이마의 피어싱부터, 새총이나 물총과 다름없는 브래지어, ‘블로잡’용 풍선, 성기를 연결시키는 장난감까지, 발기와 발정을 둘러싼 허다한 디테일들은 민망함과 유치함을 무릅쓰고 쉼없이 등장한다. 여기에 <매트릭스>식 슬로모션으로 콧물을 발사하는 엽기쇼 따위가 첨가되면 여자없는 남자의 추잡함을 보여준다는 의도는 웃기지도 않는 역겨움 속에 묻히고 만다. 샘의 그림 솜씨와 보디페인팅, 초기 애니메이션 인용과 변주 등이 흥겨운 록에 실려 로맨틱한 재기 발랄함을 선사하려 애쓰지만, 장점이 단점을 가릴 정도는 못 된다.

더 난감한 건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여자를 향한 남자의 대시가 모두 여자의 시험에 의한 것이란 점과 그 과정에서 남자는 엉뚱하게 다른 짝을 만난다는 반전. 이런 무리수는 각양각색의 섹시녀들을 훔쳐보고 그녀들에게 쫓기면서도 끝내 그녀들에 둘러싸여 로맨스를 이룬다는 한 남자(=관객)의 저급한 남성판타지를 위해 생각없이 남발된다. 여러 면에서 관객에 대한 기본적 싸가지를 상실한 <아메리칸 러브홀릭>은 결국 <내사랑 싸가지>의 미국판이라 해도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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