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은 김동원 감독이 10년 동안 찍은 비전향 장기수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비전향 장기수 두 사람을 봉천동으로 데려오자는 한 신부의 부탁을 받아들여 습관처럼 카메라를 챙겨 나간 것이 질긴 인연의 시작이 됐다. 조창손, 김석형 두 비전향 장기수가 머물고 있다는 대전의 한 요양원으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신부에게서 ‘그들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귀띔을 전해 듣고서 두려움과 호기심이 교차했다는 그는 봉천동에 정착한 뒤로 이질적인 체제 아래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빠짐없이 담는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들은 좀처럼 카메라에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남파 당시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는 그들은 “그것까지는 물을 필요없습니다. 그런 정도로만 아시고”라고 고개를 젓거나 “뭐 그런 소리를 담아. 그러다간 큰일나지”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렇다고 <송환>이 변죽만 울리다 마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자신에게로 되돌린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단 며칠 아니 몇분도 못 견딜 그 잔인한 전향공작을 어떻게 참아낼 수 있었을까. 그 힘은 무엇일까”라는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한 호기심 어린 질문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평생을 혁명에 바친 줄 알았던 사람들이 동구권이 무너지자 뿔뿔이 흩어졌고”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었던 나도 어느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생활의 유혹을 느끼던” 그에게로. 어떠한 감정도 섞이지 않은 듯한 감독의 1인칭 내레이션이 시종일관 긴장을 베어물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대상에 대한 섣부른 단정을 유보하면서 감독은 자신을 추궁하며 대상화한다. 사적 고백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송환>은 한 개인의 감독이 그러했듯이 보는 이 또한 카메라가 던지는 질문에 진술하게 만든다. 그래서 적잖게 곤혹스럽다. 러닝타임만 148분. 다큐멘터리는 지겹다, 는 편견을 염려하듯 <송환>은 재미난 가이드를 자처한다. “북한괴뢰가 밀파한 간첩 일당이 일망타진됐다”는 대한뉴스와 〈113 수사본부>와 같은 반공드라마 등을 보면서 “남한에서 태어나길 잘했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감독의 유년 시절은 누구나 갖고 있는 공통의 기억이기에 설득력을 갖는다. 민족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고 설파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임사 장면에선 ‘사상’을 ‘상상’으로, ‘민족’을 ‘민조’로 발음하는 김 대통령의 사투리에 방송 불가 효과음을 넣어 웃음을 수혈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송환>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건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감독은 이들을 다같은 비전향 장기수로 넘겨짚지 않는다. “미국이 있는 한 남한은 아직 해방된 것이 아니라”는 고집불통 이념가도 있지만 “마치 아이들을 자신의 손자마냥 귀여워하는” 할배 또한 있다. 다양한 캐릭터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소리 높이진 않지만 비판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반공이 국시’ 임을 믿어 의심치 않던 보수 언론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이 결정되자 호들갑 떨며 취재 경쟁을 벌이는 것을 비꼬고 경제제재 등의 조치를 가하며 북한에 핵 포기, 체제 포기를 요구하는 미국 또한 전향서를 요구하며 의지를 폭력으로 꺾으려 했던 남한 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일갈한다. 또 다른 금기의 영역이던 민주화 세력에도 <송환>은 “스타를 내세워서 상품화하려는” 언론에 동조했다며 화살을 날린다. 비전향 장기수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폭력에 굴복했다는 이유로, 회유에 넘어갔다는 이유로 비전향 장기수들이 전향자들에게 가한 상처를 <송환>은 눈감지 않고 응시한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 ‘그들’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패배자일까, 체제 전복의 의도로 똘똘 뭉친 괴물일까, 죽음을 무릅쓰고 이념을 사수한 투사일까, 남북 모두에 이용당한 희생자일까. <송환>은 이 물음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지 않는다. 대신 한발 물러서서 한반도에 비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그것을 들여다보라고 주문한다. 동시에 시대와 이념에 거세당했던 인간의 모습도 드러난다. 45년 만에 만나 뼈밖에 남지 않은 노모의 앙상한 볼에 얼굴을 부비는 백발청년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선생이 세상에 단 한 사람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는 감독의 멘트는 그들이 누구였는지에 관한 질문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 후반부에 북으로 간 뒤 영웅 대접을 받는 조창손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북에 가지 못한 김동원 감독에게 “말을 안 했지만은 아들이라고 해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에요”라고 카메라에 진심을 털어놓는 장면 또한 그렇다.
혹시 기억하는가. <상계동 올림픽>(1988)은 김동원 감독이 빈민의 친구가 되기로 약속한 결과였다. 그는 이번에도 대상을 취하기 위해 조급해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나갔던 습관이 송환운동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영상물 만들기로 바뀌기까지 3년이 걸렸고, <송환>이라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맘먹기까지 다시 4년이 걸렸다. 그는 장기수들이 감옥에서 보낸 수천년의 세월에 비하면 12년이라는 제작 기간은 그들을 이해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여길 사람이다. 삶보다 앞서지 않는 그의 낮고 겸손한 카메라는 그래서 신뢰가 간다. 빨갱이를 증오했던 무덤 속의 아버지와 이제는 북으로 간 아버지 같은 장기수 선생들이 김동원 감독의 따뜻한 연서 <송환>을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경쟁작들이 떨고 있다고?
영화계 인사들의 <송환> 관람 소감
3월8일 오후 6시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영화계 유명인사들이 함께 자리했다. 독립다큐멘터리 <송환>의 VIP 시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느 블록버스터영화의 시사회에 못지않은 이날 열기는 영화가 상영되자 폭소를 터뜨리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전환됐다.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 뒤지지 않는다”(배우 권해효), “가슴 아픈 장면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영화”(배우 배두나), “내레이션의 목소리가 주는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감독 박찬옥), “전체적으로 주관을 많이 배제시키면서 건조하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서 참아왔던 감동이 밀려드는 느낌이 있다”(감독 박찬욱), “여태까지 영화 만들기 최고의 가치는 재미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생각을 무색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다”(감독 김지운),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어 다큐멘터리도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배우 안성기) 등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김동원 감독과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영화사 봄의 오기민 대표는 “3월19일에 개봉할 우리 영화의 경쟁작인데 타격이 클 것 같아서 두렵다”는 농담으로 <송환>을 응원했다. 이날 시사회에는 <송환>의 프린트 5벌을 지원하기로 한 강제규 감독도 자리했다. 이같은 환호에 김동원 감독 자신은 “좀 얼떨떨하다. 내 영화뿐 아니라 많은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