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e De Jour 1967년
감독 루이스 브뉘엘 출연 카트린 드뇌브
EBS 3월13일(토) 밤 10시
루이스 브뉘엘 감독만큼 ‘문제작’ 리스트를 자랑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비리디아나>와 <부르조아의 은밀한 매력> <욕망의 모호한 대상> 등 그의 영화는 계급과 종교, 그리고 상식의 경계를 비웃었다. <세브린느> 역시 평이한 영화는 아니다. 아름다운 자태의 카트린 드뇌브가 몇 명의 남성들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오프닝을 보노라면 어리둥절해질 지경이다. <세브린느>는 1967년 베니스영화제 수상작. 그럼에도 루이스 브뉘엘 감독의 명성에 보답하듯 이 영화는 당시 평단의 찬반양론이 들끓었던 유쾌한 문제작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업가 피에르과 결혼한 세브린느는 남편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에게서는 전혀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무료한 결혼생활 중에 남편의 오래된 친구가 정숙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녀를 유혹하려 들지만 세브린느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해 여러 남자들로부터 매질과 모욕을 당하는 마조히즘적인 환상을 키우고 있었다. 다른 부인들이 매춘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세브린느는 마담 아나이스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부르조아의 은밀한 매력>(11972) 등 감독의 후기작이 그렇듯 <세브린느>는 계급에 관한 조롱에 포커스를 맞춘다. 정숙한 아내인 세브린느는 낮에는 음탕하게 자신의 육체를 남성들에게 허락한다. 그런데 밤이 되면 다른 여인이 된다. 사업가 피에르의 아내로서 직분에 충실하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존재, 그리고 그들의 심리적 불안정성을 관찰하는 것은 브뉘엘 후기 영화의 강조점 중 하나다. <세브린느>는 무엇이 현실인지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막 벌어질 듯하면 그것이 세브린느라는 여성의 나른한 공상이었음이 곧 밝혀지는 식이다. 여성 캐릭터의 몽환적인 성적 환상, 그리고 무료한 일상 사이를 오가면서 초현실주의 특유의 영화적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서구 비평가들은 <세브린느>에서 다양한 문화 코드를 읽어냈다. 다른 고전회화의 모티브를 응용하고 있으며 사운드 실험을 행했다는 것이다. 소품들, 즉 채찍과 옷 등의 물건들이 어떻게 인물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를 고찰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영화 <세브린느>는 결코 브뉘엘 감독의 최고작 수준은 아니다. 마치 한편의 성인영화를 보듯 가벼운 농담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단한 껍질에 가려진 듯 위선적 삶을 반복하는 특정 계층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듯 신랄한 고발장을 낭독하고 있는 영화는 드물다. <셀브르의 우산> 등 프랑스영화 여주인공이자 우아한 자태의 소유자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카트린 드뇌브의 연기변신 역시 놀랍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