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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재현된 피의 일요일, 해외신작 <블러디 선데이>
김현정 2004-03-09

1972년 1월30일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열세명의 아일랜드 민간인이 영국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평소보다 규모가 큰 시위를 조직했을 뿐인 아일랜드인들은 열일곱살 소년 재키 더디의 죽음으로 시작된 그 날의 학살을 ‘블러디 선데이’라고 불렀고, 20년 뒤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청문회가 열릴 때까지도 잊지 못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죽음의 날.

2002년 제작된 <블러디 선데이>는 30년 전 그 하루를 네명의 시선에서 재구성한 영화다. 아일랜드 민권운동가이자 하원의원인 아이반 쿠퍼는 대규모 시위를 눈앞에 두고 불안해한다. 가톨릭 신자로 막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아일랜드 소년 제리, 제8사단을 지휘하면서 유혈사태만은 피하고자 했던 매클란 준장, 통신을 맡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목격자가 된 젊은 공수부대 대원은 쿠퍼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피의 일요일을 기억하게 된다.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묵은 원한이나 발포명령의 배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다만 바라볼 뿐이다. 그는 시위대 일부가 통제에서 벗어나 망연해하는 쿠퍼의 모습이나 줄지어 실려오는 시신 앞에서 할말을 잃은 기자들, 행방을 알 수 없는 가족을 찾아 통곡하는 아일랜드인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를 본다기보다 사건을 체험하고 있다는 느낌에 이르게 된다. 부상자와 사망자, 가족과 시위 지도자들이 뒤섞인 병원장면은 마치 다큐멘터리와도 같은데, 그곳에서 눈물을 쏟는 엑스트라의 일부는 사건 당시 정말 가족을 잃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린그래스는 아일랜드 시민들로 데리 시위대를 구성했고, 전직 병사들을 찾아내 공수부대를 조직했다. 치밀한 재현. 그 재현만으로도 <블러디 선데이>는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총알을 발사한 이들과 죽어서도 목소리를 묻어야 했던 이들을 위해 거대한 물음표를 그려낸다. <블러디 선데이>는 침묵으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