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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사막에 외로운 객기, <청춘호>

만화창작 동아리 ‘테두리’ 회지 <청춘호>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학생들로 구성된 만화동아리 테두리의 회지 <청춘호>는 일관된 주제를 갖고 있는 매력적인 동인지다. 보통 동인지들이 시간에 쫓겨 미완성된 작품을 수록해 작품집을 읽기가 퍼즐을 푸는 것처럼 난해하기도 하는 데 비해, ‘테두리’는 <청춘호>라는 타이틀로 모아지는 작품을 수록해 독서가 수월하다. <청춘호>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겪는 경험과 그들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가장 밝고 명랑하며, 진취적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그들이 사실은 하나같이 외롭고, 괴로워하며, 소통부재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작품들은 하나같이 우울한 색이다.

김세중의 〈In the Evening〉은 티켓 다방에 일하는 여성과 몰락하기 이전 피아노에 얽힌 기억을 그린 작품이며, 박영순의 <상실의 시대>는 소통부재의 삶을 풍자하고 있으며, 양정우의 <호흡곤란>은 섹스, 권투, 약, 교수형 등의 중첩된 이미지를 통해 불안한 삶을 변주한다. DNK의 〈dear〉는 무명 로커와 여성 노동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지만, 죽음으로 결말을 맺고, 최강민의 <왜?>도 재수생 주인공의 첫사랑과 그 상대방의 몰락을 그린다. 이러한 죽음의 풍경 옆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재수생들의 모습도 있다. 싸미의 <스무살>은 매우 정확하게 일상적인 시선으로 스무살의 삶을 스케치해 간다. 한강변에 앉아 깡소주를 먹으며 나누는 모의고사 성적 이야기. 그리고 고등학생과의 싸움까지. 외워지지 않는 영어단어에 괴로워하는 이기평의 <재수의 추억>과 함께 이 두 작품은 보기 드문 재수생의 이야기를 담아낸 날것이다.

야후 비주얼 뉴스에서 특유의 솔직한 시선으로,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앙꼬의 작품 〈The Life〉는 서사를 능란하게 다루는 작가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앙꼬와 함께 연재 중인 권용득은 치밀한 미장센을 보여주는 <집에 돌아가는 길>과 유쾌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삶이 그댈 속일지라도>를 보여준다. 이 밖에 이윤미, 안윤정, 박견의 작품도 모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소통하지 못하는 삶의 답답함을 드러낸다.

죽음, 외로움, 따돌림과 같은 우울한 단어들이 작품 전체를 드러내는 정조이지만, 그 우울함이 바로 현실이기 때문에 <청춘호>는 스스로 존재가치를 웅변한다. 스무살의 시선으로 솔직하게 자아와 타자를 바라본 이들 만화를 보고 나면 붕어빵 기계에서 뽑아낸 듯한 주류만화가 왜 독자들에게 외면당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만화는 이렇게 성장하고 있고, 만화를 배우고, 만화를 창작하려는 젊은이들은 스스로 자라나고 있다. 이 동인지는 부천만화정보센터 출판지원을 받아 꽤나 고급스럽게 출판되었다. 이런 작업도 의미있지만, 이것보다 더 가볍고 발빠르게 새로운 만화를 찍어내고 유통하는 방법도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