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440호 기획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지지난주<씨네21>엔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의 불안과 강박’을 논하는 의미로운 자리가 마련됐다. 마치 이런 기획을 지금쯤 안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타이밍 ‘죽이는’ 기획이었다. 나로선 ‘영화읽기’에서(437호) 감독 의도에 충실하느라 대충 수습하고 넘어갔던 <말죽거리 잔혹사> 비판이 둑이 터진 듯 쏟아진 것도 흥미로웠는데, 그 대부분은 공감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4인4색’치곤 너무 모노톤인걸, 싶을 때쯤, 이 글을 쓰게 만든 대목과 마주치게 됐다. 심영섭은 <말죽거리…>가 교실 속에 과거를 가두느라 전태일의 70년대와 박종철의 80년대를 까먹기 때문에,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의 뒤돌아보는 ‘척의 제스처’는 명백한 퇴행”이라 단정한다. 유운성도 다소 애매한 과정을 통해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그는 노스탤지어 영화들이 비인칭적인 대중의 기억을 자극하는 과거의 환유적 대상들(교련시간, 이소룡 따위)을 추억인 양 속이므로 “우리가 차마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과거”를 “거짓 기억”으로 바꾼다고 주장한다. 추억을 대중적 재현이 불가능한 개인적인 과거로 한정하면서도 ‘우리’라는 집단 주체로 거론할 때의 과거란 대체 무엇일까? 역시 전태일과 박종철이 어른거리는 과거일까? “우리에게 각인된 외상의 기원”이란 표현을 보면 그렇게 읽히는데, 아무튼 그 기원을 찾아 과거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못 박는다. ‘우리’를 ‘우리 각자’로 고쳐 읽더라도 결론은 같다.
정치사회적 대중기억을 파열하는 영화들
한마디로 심영섭이 반복해서 명령하듯 ‘남자들이여 뒤돌아보지 마라’는 거다. 그러나 늘 남성감독에게 준엄하게 한수 가르치던 여성평론가의 시선이 80년대의 장선우나 박광수에게 쏠리는 건 다소 뜬금없었다. 하긴 <살인의 추억> 평에서도 그녀는 80년대를 죽어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전력이 있다(401호). 그건 좋은 태도이나, 영화가 전제하는 현실의 범위를 무시하면서까지 정치·사회사적 거대서사를 소환하는 게 온당할까? 극중 권상우 형이 전태일 친구쯤 됐어야 하는 걸까?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에 나르시시즘이 녹아 있다 해도, 과연 명백한 퇴행으로 매도될 만큼 무의미한 판타지일 뿐일까?
하지만 당시의 노동현장이나 고문현장을 지금 재현한다고 할 때만큼 유운성이 말한 바의 대중기억에 호소할 위험이 커지는 순간도 없을 테다. 아무리 처참한 경험을 겪은 이들이 많다 해도, 과거의 압제는 공식역사든 준-공식역사든 매체를 통해 주입된 비인칭적인 기억과 구분해서 떠올릴 수 없다. 말하자면 ‘민중’도 익숙한 미디어적 이미지로 ‘대중’의 머리 속에 재현되게 마련이다. 80년대식 사회적 리얼리즘 또한 그것에 체험적으로 소구되는 관객보단 그것을 상징적으로 공유하는 관객이 더 많았을 것이며, 비록 당대에는 유효한 미학적 전략이었다 해도 이젠 이미 대중기억을 주조한 하나의 주물로 남아 있다. 지금 와서 탄광촌의 운동권을 그린다면 <그들도 우리처럼>(1990)이 유포하기도 했던 대중기억의 자장에서 자유롭기 힘든 셈이다. 그 제약을 뚫고 대중적인 ‘거짓 기억’을 넘어 전에 없던 진정성에 도달하기란 노스탤지어가 판타지로 전락하지 않는 것만큼 어렵고, 386 국회의원이 386을 팔아먹지 않는 것보다 어렵다.
달리 보면, 바로 이런 정치·사회사적 대중기억을 파열하기 시작한 것이 (이젠 한물갈 때가 된) 복고풍 영화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가치평가에 앞서 시대적 흐름에 따른 대중영화의 진화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문화 전반의 진화와 상응했단 점은 주목을 요한다. 가령 90년대 한국 문학은 80년대식 리얼리즘으로부터 급격히 대중문화적 일상으로 돌아섰는데, 영화도 그런 문학에 스텝을 맞추려 애썼다. 더불어 신세대 꼬리표가 붙은 일련의 문화적 변화는 민중문화의 80년대와 대중문화의 90년대를 화해 불가능한 적대적 시대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대중문화세대의 한 대변자였던 시인 유하는 대중문화세대가 70년대부터 상존했음을 천명했단 점에서 각별한 면이 있다. 이전의 문학에서 이런 표지를 읽을 수 있는 경우는 이인성밖에 없었는데, 그마저 문학적으로 공인된 건 아니었다. 지금에야 그 차별성을 식별하기 어렵지만, <말죽거리…>가 영화적으로 한국의 첫 대중문화세대의 세대성을 명시한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대중의 무의식을 섬세하게 돌아보기
이것이 중요한 건 대중문화가 90년대 와서가 아니라, 그 광포했다는 70∼80년대에서도 (특히 10대에겐) 일용할 양식이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명백한 일상의 환유였다. 70∼80년대 하면 떠오르는 유신과 박정희, 화염병과 최루탄 따위의 환유적 대상물들말고도, 우리에겐 더 일상적인 어찌보면 더 중요했던 것들이 발견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그것들이 지나친 향수로 소비됐다고 해서 그 의미마저 간과돼선 곤란하다. 제도교육에 대한 저항이 권상우의 ‘자뻑’을 위해 동원된다고 비판해도, 이소룡이라는 환유적 판타지를 빌려서라도 저항하고 싶었던 진심마저 무시하긴 힘들다. 세운상가에서 ‘빽판’ 사며 데이트하거나, 춘화 제작용으로 구입한 비디오가 <전원일기>로 밝혀지는 것처럼(<품행제로>), 대중문화는 거대서사는 아니었지만 거대체제와 등을 맞댄 미시적 저항과 감상과 웃음의 해방구였다. 더불어 그것은 전혀 무관한 듯 보였던 체제의 환유물들이 얼마나 미시적으로까지 침투했는지를 드러내는 일상의 단면과 같다. 본토의 진품 ‘나이키’와 본국의 짝퉁 ‘나이스’는 미국과의 관계를 디테일하게 검출하는데(<품행제로> <묻지마 패밀리> <살인의 추억>), 자생적 대중문화가 부실하던 시절 유입된 해외 대중문화는 복고코드의 또 다른 이면을 들추게 한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아버지는 이보다 더 80년대적일 수 없다. 중동에 돈 벌러 간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를 보호해야 하는 양동근은 그 부재의 기표를 과시적인 디스코 바지의 페티시로 벌충하기도 한다. 이정진의 부재하는 아버지가 70년대 액션스타이자 80년대 정력맨(이것도 3S 정책의 결과다)의 대명사였던 이대근이라는 점은 체제와 결부된 당대 남성성의 일면이 대중영화의 자기반영성 속에서 드러나는 지점이다.
대중문화적 일상에 대한 회고는 결국 정치·사회사적 사건들에 집중한 기존 리얼리즘이 민중이라는 필터를 끼느라 정작 대중은 보지 못했음을 되짚게 한다. 달동네에서 똥 푸는 소년가장도 디스코를 지상의 양식처럼 소비할 수 있었다는 상상을 못해온 것이다. 이런 상상력 결핍을 메우기 시작한 건 김홍준과 이창동부터였던 것 같다. <장미빛 인생>과 <정글 스토리>는 만화방과 밴드를 끌어들였고, <박하사탕>은 어엿한 중산층 가장이 체제의 가해자였고 시대의 피해자였음을 연속성 있게 짚어간다. 확실히 상업장르로 기운 복고영화들은 분명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바야흐로 만개하던 중산층 대중문화로 재현의 범위를 확장했다. 더이상 정치적 올바름의 강박이 거대서사를 소환하지 않더라도, 코미디와 판타지가 범벅된 일상적 대중문화의 배면은 전보다 섬세하게 당대 대중의 무의식을 엿보게 했고 현재 대중의 무의식과 공명했다. 그러니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면서 과거의 영화를 돌아보는 게 도리어 이상한 퇴행처럼 보인다. 정한석 역시 <말죽거리…>는 <친구>만큼 비극성이 없다는 바로 그것이 비극이라 말한다. 거의 모든 비판의 내용엔 수긍하지만, 그 비판의 방향엔 동의할 수 없었던 연유가 이러하다.따라서 지금까지의 복고풍 학원물에 대해 “고마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관객의 폭증만큼 널리 유포된 대중기억의 고착에 다시 한번 균열을 일으킬 때가 됐다는 뜻에서다. 과거를 방기하거나 과거의 영화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재현되지 못한 과거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공부와 싸움만이 인정투쟁의 전부인 것 같았지만, 그런 손쉬운 도식 혹은 관객에게 인정받기 쉬운 편법에서 벗어나, 속으론 분노를 품고 사는 모범생 혹은 어느 때고 실존했을 제3의 평범한 다중에 더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떠한 격동 속에서도 세계의 항상성을 유지해온 비인칭의 대중에 힘입어, 내 것은 아니었으나 우리 것이었음을 추억할 수 있는 더 미세한 지점까지 미분해서 더 광대한 평면을 적분해가야 한다. 이것이 (영화의 진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중기억을 재영토화하면서 탈영토화하는 대중영화의 진화 아닐까? 자본주의와 대중영화가 경쟁하며 공생하는 방식도 여기 있을 테니.
대항-기억의 가능성
아마도 대중기억의 탈영토화는 대중기억을 갱신하는 ‘대항-기억’(counter-memory)의 창출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가 이런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말하긴 여전히 어렵지만, 대항-기억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건 80년대를 386의 전유물로 낙인찍은 대중기억을 “80년대는 몰라요”라 말하는 <해적…>의 김동원 같은 젊은 감독들이 조금씩 뒤흔들기 때문이다. 이때의 386은 연령이 아니라 80년대에 대한 고정관념을 환유한다. 봉준호나 장준환은 바로 그 고정관념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우회하고 집요하게 망상했다. <살인의 추억>은 범인의 트라우마에 ‘올인’하는 주체의 무의식 대신 애매함의 편린들로 떠도는 사회적 무의식에 착목했단 점만으로도 여느 리얼리즘 혹은 복고영화와 달랐다. <지구를 지켜라!>는 80년대의 대중기억을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와 함께 자본주의로부터 수혈받은 온갖 잡동사니 대중문화를 통해 착란하고 내파한 실험이었다. 과거에서 미래로 폭발하는 노스탤지어로서의 유토피아는 현실과 판타지, 거대서사와 대중문화를 동시에 취하면서, 80년대와 90년대를 연속적으로 통과해온 세대의 감수성을 과시했다. 무규칙이종소설가 박민규의 코드도 이와 같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프로야구를 출범부터 IMF 때까지 일상적 대중문화와 자본주의 프로페셔널리즘의 양가성을 통해 반추한다. 정색하는 시대비판 대신 대중문학의 가능성을 여는 만방의 유머와 함께.
80년대를 체제의 폭압보다 대중문화의 폭식으로 경험한 세대는 90년대를 유연하게 살아냈고, 지금 돌아보는 과거는 그래서 386의 그것과 같을 순 없다. 나는 더 옹골찬 소수자의 입장에서 더 주변적인 언어로 더 디테일하고도 더 포괄적으로 한국영화가 과거를 재생산하길 빈다. 아직 여러 버전의 80년대가 스크린에 더 걸려야 한다. 그것은 더이상 유하식 후일담은 아닐 테지만, 남성 노스탤지어 영화에 어른거린 대항-기억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것일 순 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미지의 과거를, 영화를 통해 다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