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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게 세상이면 나가고 싶지 않아, 다카하시 쓰토무의 <블루 헤븐>

바다의 라스베이거스, 1200명의 승객을 태운 호화 유람선 블루 헤븐에 표류자 하나가 올라탄다. 정확히 말하면 둘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는 다른 표류자가 11명의 선원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죽여버린 살인귀라는 사실을 알린 뒤에 죽어버린다. 이제 ‘블루 헤븐’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행성 지구와 같은 존재가 되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은 단 하나의 힘에 의해 다시는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할 운명에 처하고 만다.

<지뢰진> <철완 소녀>의 다카하시 쓰토무가 어디 가겠는가? 이번에도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할 궁지로 몰아넣고 그들이 살아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진저리나게 보여준다. 그리고 단계마다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전혀 엉뚱한 상황을 펼쳐 보인다. 유람선에 존재하는 진정한 위험요소는 동양인 살인범이 아니다. 전신 화상으로 일그러진 신체로 소리만 겨우 들을 수 있는 대갑부와 그가 ‘제조’한 악귀 같은 가족들은 이때를 틈타 유람선 안의 동양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쾌락의 살인 잔치를 벌이려 한다. 아니 동양인들뿐이 아니다. 자신의 가족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의 절규를 보고 기쁨에 몸부림친다.

10년 동안 감금당한 뒤 폐쇄된 미디어에 의해 살인귀로 개조된 인간, 오직 자신만이 세상을 다스릴 자격이 있다는 나치즘적인 재벌과 그 자식들, ‘인간으로서의 의무’ 때문에 난파된 배의 표류자를 구해낸 뒤 유람선 전체를 지옥으로 떨어뜨린 선장의 윤리적 고뇌, 동양인 하나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그것으로 동양인 모두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인종주의, 행운의 당첨으로 행복의 유람선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신혼부부의 아이러니…. 우리의 예측을 가장 크게 뒤엎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인데, 이처럼 그럴듯한 요소들을 잔뜩 끌어안은 이 작품이 그 모두를 흐지부지 끝내고 만다는 점이다. 표류자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일본에 가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건가? 그리고 과연 가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 걸까? 끊임없이 유람선을 ‘지구’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 세계에는 그 지독한 몰골의 갑부 가족과 같은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까? 아니면 그런 존재들의 손끝 하나로도 멸망가능하다는 비관주의를 말하는 건가? 인종주의에 대해 말하면서 왜 그것의 해결책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걸까? 작품의 중심에 있는 ‘인간적인’ 캐릭터들만 살려놓으면 해결되는가? 나는 이 만화, 그리고 유람선 자체가 마치 두개의 절대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들이 살육 게임을 벌이기 위해 만들어진 세트로만 보인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