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3일 수원의 한 나이트 클럽 앞에서 <가족> 촬영이 한창이다. 갑작스레 스산해진 바람이 매서워선지 두뺨이 발갛게 얼어 있는 수애는 뜨거운 물을 담은 물병을 소매 속에 넣으면서 연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극중에서 정은(수애)은 막 출소해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전과 4범의 전직 소매치기이다. 옛 동료였으나 지금은 범죄조직의 보스가 된 창원(박희순)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족을 위협하자 그녀는 그의 위협에 맞서서 가족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날 촬영분은 창원을 만나기 위해 나이트 클럽으로 찾아간 정은이 출입문의 창을 부수는 장면이다. 유리를 쇠파이프로 깨부수는 위험한 장면이기 때문에 감독과 스탭들은 사뭇 긴장한 표정이나 정작 수애의 표정은 담담하다. 여러 차례 창문을 깨는 동선을 연습하고 창의 안과 밖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지루한 작업이 지나고 드디어 본촬영이 시작되었다. “강화유리라서 안으로만 튀니까 걱정하지마”라고 수애를 안심시키는 이정철 감독. 스탭들은 유리창의 반대편에서 사진촬영을 기다리는 사진기자들에게 “유리가 튀면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한다. 긴장된 순간. 감독의 “액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쇠파이프를 들고 벌겋게 감정몰입한 눈동자를 치켜뜨고 계단을 뛰어올라온 수애는 있는 힘껏 쇠파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으로 튀는 유리조각들. 몸을 사리지 않고 배역에 몰두했던 수애는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궁금함으로 가득 찬 눈을 하고 모니터로 달려간다. 스탭들이 산산조각난 유리를 새로 갈아끼우는 동안 수애는 첫 번째 촬영 부분을 유심히 돌려보고 돌려보며 진지하게 스탭들과 몇 마디 나눈다. 두 번째 시도. “수애야! 격렬하게 깨줘! 액션!” 감독의 힘있는 외침과 동시에 쇠파이프를 다시 휘두르는 수애. 갈아끼운 창문은 다시 한번 박살이 났다. 첫 번째 테이크보다 더욱 격렬하게 유리를 깨는 수애의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스탭들은 놀란 표정이고 감독은 미소를 얼굴에 보인다. 수애는 “무섭지 않았어요, 깨고 나니 속이 많이 시원해졌어요”라고 살짝 웃으며 이야기한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평가받고 싶다”라며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수줍게 피하는 이정철 감독이지만 수애의 강단있는 연기에 대한 만족감은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새 인생의 출발을 결심하는 전과범 딸 정은과 오랜 병을 앓고 있는, 딸을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좀체 표현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 주석(주현)이 우여곡절 끝에 서로에 대한 가족애를 확인하는 훈훈한 휴먼드라마 <가족>은 올해 4월 말 개봉될 예정이다.
사진 오계옥 · 글 김도훈
△ 촬영이 거듭될수록 자신감을 얻은 수애는 ‘더욱 격렬하게’를 외치는 감독의 요구에 충분히 부응하는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왼쪽 사진)
△ 리허설도 실전처럼 임하던 수애는 두 번째 촬영에서 유리창을 깨다가 문고리까지 부숴 버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오른쪽 사진)
△ 수애는 커다랗고 순진해 보이는 눈으로 사람들의 시선에 쑥스러워하다가도 감독의 사인만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바로 ‘정은’ 역에 몰입해, 붉게 상기된 눈으로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왼쪽 사진)
△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피하는 수줍은 이정철 감독은 마치 스탭들과 배우들의 작은형처럼 현장을 부드럽게 진행해 나갔다. (오른쪽 사진)
△ 촬영이 끝날 때마다 달려와서 모니터 속 자신의 연기모습을 체크하는 수애. (왼쪽 사진)
△ 얇은 수트 차림으로 쌀쌀한 날씨를 견디며 카메라를 노려보아야 했던 박희순과 엄태웅. (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