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안도현, 작화 최규석·변기현 <짜장면>
2003년 웹을 떠돌아다니는 한편의 만화가 있었다. 노가다를 하는 둘리, 사기꾼 도우너, 매춘에 나선 또치, 세월이 흘러 늙어버린 동심의 주인공과 그들이 풀어내는 슬픈 이야기가, 2003년 서울의 일상을 변주하며 흐르는 만화였다. 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게재되었고 작가가 다시 <공룡 둘리>라는 본 제목을 붙어준 만화. 범상치 않은 단편으로 단박에 기대주의 목록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한 최규석이 졸업동기 변기현과 단행본을 냈다. 안도현의 원작을 만화로 옮긴 <짜장면>. 안도현의 서정과 최규석, 변기현의 작화가 탁월한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이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마케팅을 못한 출판사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보석의 빛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짜장면>은 한없이 자상하고 존경을 받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어머니에게만은 폭력적인 모습을 보다 못해 가출한 열일곱살 소년의 이야기다. 줄곧 일등만을 해온 모범소년에서 만리장성 총각으로 변신한 주인공은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폭주가 있다. 윤태호의 <야후>가 소통의 부재를 통해 상처받은 아들들의 이야기를 거대하게 왜곡된 역사를 씨줄로 풀어나간 데 비해, 또 다른 상처받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짜장면>은 그 이야기를 작고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풀어간다. 오토바이를 통한 폭주, 절벽에 떨어진 이야기, 아버지에 대한 반항. 두 만화의 같고 다른 모습들을 읽으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것이다.
좋은 원작이, 이야기가 어떻게 만화의 힘이 되는가를 볼 수 있는 재미도 <짜장면>에 있다. 시인이지만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한 안도현의 아름다운 문장이 구석구석에 오롯하다. 안도현은 차분한 톤으로 책임, 존재, 눈물, 질주, 이별과 같은 상투적인 단어들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가를 보여준다. 컴퓨터의 힘을 빌려 틀에 넣어 찍어낸 듯한 채색이 아닌 수채로 채색된 컬러는 삶의 이야기를 더욱 친밀하게 한다. 일본만화의 과장된 인체와 동작에서 해방된 인물과 그 인물이 사는 우리의 풍경도 좋다(일본제 배경톤을 붙여 탈공간을 만들어버린 만화들이 버젓이 잡지에 연재되는 천박한 상황과 비교하면, 무수한 노력과 연습으로 만들어낸 인물과 풍경은 좋은 미덕이다). 이 만화를 보는 내내, 열일곱의 시절을 이미 떠나보낸 사람들은 그 시절에 느꼈던 생생한 감정에 물들 것이고, 아직 열일곱의 시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내 삶을 한번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