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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장가] 개봉작 10편, 풍성한 밥상

두 고래,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싸움 사이에서 ‘새우등’ 안 터지고 남은 파이조각이라도 가져가려는 작은 영화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대작은 없지만 이번 주 개봉작이 무려 10편이다. 흥행 대작의 십자포화에 질린 관객들에게는 더없이 풍성한 밥상이 차려지는 주말이기도 하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돋보기를 써야 신문을 읽을 수 있는 노친네들의 사랑이야기지만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로맨틱 코미디다. <왓 위민 원트>에서 여성들의 심리와 판타지를 능수능란하게 열어보인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신작으로 다이앤 키튼과 잭 니콜슨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어떤 찬사로도 부족해 보인다. 아카데미 시즌에 맞춰 한국에서도 해마다 개봉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아카데미 후보(여우주연상 부문)’ 개봉작의 첫 타자다.

‘3대륙을 달리네’ 크구나 그 사랑 <머나먼 사랑>

<머나먼 사랑>은 목숨을 걸고 난민구호활동에 헌신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꽃피는, 그래서 ‘숭고하다’는 표현말고는 다른 어떤 수사도 용납하지 않는 로맨스 영화다. 로맨스 앞에 ‘어드벤처’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을 수는 있다. 카메라는 에티오피아에서 캄보디아, 체첸까지 3대륙을 달리며 이들의 로맨스 스케일이 얼마나 거대한지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80일간의 세계일주 속에 꽃피는 사랑이라면 모를까, 속사정은 거두절미된 채 과도하게 잔인한 악인들과 속수무책으로 비참하게 당하는 선인들이 등장하는 이국적인 풍경이 로맨스의 배경그림으로 등장하는 걸 보는 건 편치 않다. 편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쾌하다.

게다가 닉은 구호지원금을 얻기 위해 CIA와 손잡고, 영화는 이것을 문제이기는커녕 그의 헌신성을 드러내는 척도로 보여준다. 이런 윤리적 파탄 상태에서 ‘숭고’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의 무모함을 천진하다고 해야 할지, 정신분열증이라고 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13일 개봉.

남자셋 여자셋 뒤엉킨 ‘작업전선’. 자크 리베트 감독의 ‘알게 될거야’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프랑스 누벨 바그 세대의 노장 감독 자크 리베트의 2001년작 <알게 될거야>가 13일 개봉한다. 자크 리베트 영화 가운데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세쌍의 남녀 사이에 종횡으로 얽힌 연애관계의 지도이다. 마치 일련의 남자와 여자들을 세워놓고 좋아하는 이성을 향해 화살표 버튼을 누르도록 하는 텔레비전 프로처럼, 화살표들의 방향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바뀐다. 엉뚱하고 영악하고 때론 순진하기도 한 인물들의 ‘작업’ 방식을 풍속도처럼 그려보이는 영화의 태도는 느긋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러면서 디테일 안에는 심리와 행동, 욕망과 대상이 불일치하는 아이러니를 담아 긴장을 자아내는 지적인 영화다.

이탈리아 연극단의 대표인 위고와 이 극단 배우 카미유는 동거하는 사이다. 둘은 연극을 공연하러 파리에 온다. 카미유는 3년전 파리에 살았을 때 사귀었던 철학교수 피에르를 만나면서 마음에 동요를 느낀다. 피에르는 발레와 요가를 가르치는 소냐와 새로 동거하고 있다. 피에르는 카미유-위고 커플을 식사에 초대한다. 그 자리에서 위고는 심사가 불편하다. 예술가답게 변죽을 울리면서 피에르를 살살 긁는다. 하이데거 전공인 피에르는 곧이 곧대로 반응하다가 스스로 흥분해 철학강의를 해댄다. 집으로 온 뒤 카미유는 위고와 한바탕 싸운다.

유혹하고 달아나고 고백하고…복잡한 인물 심리·욕망 끄집어내

어수선한 두 커플 곁으로, 세번째 커플이 등장한다. 여대생 도미니크와 건달인 아튀르는 엄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남매다. 위고는 파리에 온 김에, 파리에 있다는 이탈리아 극작가 골도니의 미발표 희곡을 찾아나선다. 마침 그 희곡을 보관한 것으로 기록된 인물이 도미니크의 조상이었다. 도미니크 집의 서재에서 희곡을 찾으며 위고와 도미니크는 가까워진다.

이들이 유혹하고 달아나고, 고백하고 거부하는 모습에서 각자의 유형이 드러난다. 고지식한 피에르는 고집이 세고 거절당하기 싫어한다. 오랜만에 나타난 카미유에게 무심한 척하더니 이내 사랑을 고백하고 카미유가 거절하고 자기집 다락방에 가둬버린다. 카미유의 심리도 간단치가 않다. 피에르 곁에 가서는 아무 말도 않더니, 피에르가 고백하자 거절하고 돌아온다. 카미유가 원한 건 피에르의 고백이지 피에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곤 위고에게 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사이에 다른 남자와의 하룻밤짜리 사랑을 경유한다. 무례하고 미련한 건달 아튀르가 그 덫에 걸린다.

영화에서 남자들은 다 미련하고 엉뚱하다. 그래도 위고가 덜 미련하고 상식적이다. 대가족으로 사는 남유럽, 이탈리아인답게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도미니크의 사랑고백을 거부하고는, 피에르에게 결투를 청한다. 결투를 신청하는 것 자체도 우습거니와, 연극 무대 위를 높이 가로질러 걸쳐진 외나무 다리에서 보드카 한병을 들이켜는 결투의 방식도 웃긴다. 반면 여자들, 카미유와 소냐는 연대한다. 남녀간의 차이도, 이 영화에서 읽어낼 재밌는 단상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