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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면서도 역겨운 불륜 다뤘다"<욕망>의 김응수 감독
2004-02-10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로 데뷔한 김응수(38) 감독이 금기시된 섹스를 다룬 <욕망>(공동제작 명필름ㆍMBC프로덕션)을 20일 선보인다. 1987년 서울대 총학생회 대외홍보부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모스크바에서 영화를 공부한 뒤 `386세대 운동권'의 후일담을 다룬 데뷔작을 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가 이듬해 개봉했다. 그후 오랜 시간이 흐르기는 했으나 동성애와 불륜을 소재로 택한 것은 `전향'과 맞먹는 파격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영화 촬영을 마친 직후인 2002년 2월 김응수 감독은 `운동권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러운지 "내가 어느 집단 출신이라고 해서, 예전에 어떤 작품을 연출했다고 해서 일정한 틀에 규정될 수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지난주 시사회에 이은 기자회견장에서는 더이상 운동권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지 않았다. 2년 전 김 감독의 항변이 먹힌 덕일까, 아니면 이제는 운동권에 대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탓일까.

"우아하면서도 역겨운 불륜을 담았습니다. 어느날 나를 기다리던 애인을 버려두고 다른 소녀를 따라가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의 배신은 부끄럽고도 달콤했지요. 그 기억이 인간 내면의 근원적 욕망을 들춰내보자는 결심의 단초가 됐던 거지요."

남편이 남자 애인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 배신감과 질투심으로 연적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는 대단히 자극적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선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지나치게 과묵하다 싶을 만큼 주인공들의 표정만으로 내면심리를 따라간다.

"주인공들도 캐릭터를 해석하지 못해 몽롱한 기분으로 연기했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바로 제가 원한 겁니다. 현실과 꿈,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원하는 것과 금지된 것의 경계에 놓인 욕망의 모호한 실체를 드러내고자 했거든요. 시나리오를 읽어보게 하거나 표정 연기를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리허설을 혹독하게 했고 촬영 때도 감정이 우러나올 때까지 기다렸지요."

그는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모험을 시도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를 찍었던 소니사의 HDW-F900 카메라를 이용해 HD(고선명) 디지털로 촬영했던 것. 디지털 카메라는 현장에서 스크린 화질 그대로 확인하며 얼마든지 다시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필름에 비해 화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HD 디지털 카메라는 화질의 문제점을 말끔하게 해결해주며 온라인으로 상영하는 데도 수월하다.

"명필름이 작가주의 영화의 대안적 시스템을 모색하다가 HD 디지털 영화를 계획했고 많은 노하우를 쌓은 MBC 프로덕션과 손을 잡았습니다. 저는 HD 디지털을 질감과 색감의 인공성을 살리는 데 활용했지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화면에 재현하기보다는 머리 속에서 그려보는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처음 보는 곳인데도 익숙한, 눈에 익은 곳인데도 낯선 기시감(旣視感)과 미시감(未視感)을 느끼며 주인공의 내면을 엿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