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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이병철 드라마 탄다
전종휘 2004-02-07

정주영과 이병철이라는 두 거대 재벌 총수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마침내 전파를 탄다. 문화방송이 올해 드라마 가운데 주력 상품으로 삼는 <영웅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소원영)의 내용을 놓고 그동안 재벌 얘기다, 전문경영인 얘기다 해서 말이 많았지만 시놉시스가 최종 확정되면서 그 윤곽을 드러냈다. 드라마는 현대그룹의 정주영씨와 삼성그룹의 이병철씨의 어린 시절부터 사망 때까지 이들이 한국 경제를 일으켜세운 활동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정주영역은 차인표, 이병철역은 전광렬이 맡는 것으로 확정됐다. 문화방송 드라마국의 한 관계자는 4일 “이번주초 두 사람과 출연조건에 모두 합의했다”고 말했다.

시놉시스는 “시련과 영광의 대한민국 경제사. 그 불모지대에서 기적과 전설을 일으킨 주역들의 불꽃같았던 삶의 조명”이라고 작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드라마는 1930년대 두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해 해방 전까지 현재 이들 재벌의 맹아단계에 오기까지의 부침을 중심으로, 한 사람은 강원도의 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의 삶(정주영)을, 다른 사람은 와세다 대학을 중퇴하고 사업에 관한 한 천부적 감각을 보여주는 삶(이병철)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3년부터 5·16 쿠데타까지의 기간은 짧게 처리되고, 그 뒤는 박정희 정권과 두 재벌이 맺는 권력관계와 이들 재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일화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소리꾼의 딸 박소선을 사랑한 천태산은 열여덟살에 가출해 쌀가게 점원으로 취업한다. 자동차 정비 공장에 눈을 뜨게 된 그는 사채업자 강 영감에게 돈을 빌리며 “사업가에겐 신용이 생명”이라는 명제를 깨닫는다. 천태산은 미군기지를 지켜보다 세기토건이라는 건설업체까지 열게 되고,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부산 유엔군 묘지를 찾을 때 낙동강가의 보리싹으로 묘지를 순식간에 푸르게 장식한 일을 계기로 미군사업을 독점한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그는 ‘조국 근대화’를 내건 박정희의 분신으로 “여의주를 문 용”이 된다. 그리고서는 조선업, 중공업까지 잇따라 진출하면서 뚝심의 역정을 걷는다. 천태산은 1979년 10월 궁정동의 비극과 함께 위기를 맞지만 제2기 군사정권에 정치자금을 대며 다시 화려한 부활을 한다. 러시아 진출 와중에 대북사업에까지 눈을 뜨게 되지만, 얼마 뒤 운명을 달리하고 이를 넘겨받은 “심약한 넷째아들”마저도 비운을 맞게 된다.

이병철 회장의 삼성가는 국대호의 대한그룹으로 그려지고 있다. 김해평야를 거의다 사들이고 운수업과 정미소를 운영하던 국대호는 중일전쟁으로 대출이 끊기며 크게 한번 망한다. 국수공장과 양조장을 인수해 또 한번 목돈을 만지는 그는 예전부터 들락거리던 요정에서 기생이 된 박소선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동남아무역을 하는 대한물산공사를 차리게 되고 이는 곧 대한그룹의 모체가 된다. 한국전쟁통에 다시 알거지가 되지만 양조장과 과수원을 맡겨놓았던 사람으로부터 그간 이익금 3억원을 받으며 “사람을 중시하는 평생의 경영철학”을 가슴에 새긴다. 세기그룹이 모험적이면서 역동적인 사업을 펼치는 동안 대한그룹은 제조업 중심으로 안정된 사업을 펼친다. 88올림픽을 즈음해 국대호는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고 이는 곧 대한그룹의 미래를 이끌게 된다.

이처럼 드라마는 역사가 기록한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사실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이 될 수는 없듯’, 경제를 중심으로 본 대한민국 현대사가 이 두사람을 초점에 놓고 기술될 때 물밑의 부지런한 오리발처럼 세상을 떠받쳐온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땀어린 삶이 묻힐 우려도 있다. 시놉시스는 비록 “이들이 만들어온 역사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고 개발 도상 과정에서 말없이 희생해온 민초들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지난해 김운경 작가와 함께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죽도록 사랑해>를 통해 70년대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잔잔하게 그린 바 있는 소원영 피디를 믿어야 할까. 그는 “제목은 <영웅시대>지만 재벌이 영웅은 아니다”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고 정주영, 이병철씨 등의 공과 과를 다룰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작가 이환경씨도 4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도 한때 중동에 나가 기능공으로 일한 적이 있다”며 “정권과의 유착, 노동자들의 희생도 정직하게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년 동안의 취재과정을 거친 만큼 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사를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는 한국의 최대 재벌 2곳을 다룬다는 것 말고도 얘깃거리가 많다. ‘조국 근대화 세력’의 뒤를 이어 ‘80년 광주의 피’를 불렀던 정치세력과 결탁한 많은 정치인들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시대상을 명확히 그려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샐러리맨의 신화’로 현대건설 회장까지 지낸 이명박 현 서울시장 등 수많은 현존 인물도 등장하는데다 정주영 가문과 이병철 가문의 자식 관계와 출생의 비밀까지도 그릴 예정이어서 드라마 외적인 화제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작가 이씨가 이미 현대쪽에게서 드라마를 내보내지 말아달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드라마는 오는 5월말 첫 전파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