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봐, 돈으로 안 되는 게 뭐가 있나? 마이크 마이어스를 닮은 친구 L은 술만 마시면 땀을 흘린다. 어리버리, 땀 흘리는 오스틴 파워를 감상하는 기쁨에, 나는 종종 그를 꼬드겨 술을 마신다. 취기가 오르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땀의 양은 많아지고, 혀가 꼬이면서, 뭐랄까 이번엔 닥터 이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닥터 이블이, 나에게 물었다. 말해 봐, 돈으로 안 되는 게 뭐가 있나?
대답 대신 나는 콜라를 주문했다. 언뜻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서였고, 이럴 땐 무시하고 콜라나 마시는 게 상책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어쩌죠? 콜라가 없는데. 어깨를 들썩, 하는 바텐을 보며 나는 얘기했다. 아무, 거나.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나에게 바텐은 쎄븐 업을 내밀었다. 7시에 날 깨워 줘. 만취한 이블이 택시에서 잠꼬대를 해댔지만, 그런데, 돈으로 안 되는 게 정말 뭐가 있지?
땀을 흘리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닌 게 아니라, 미니미를 업은 것처럼 무거운 마음이었다. 돈이 최고야. 속삭이는 등 뒤의 목소리에 대해, 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걸 찾아야 해. 돈으로도 안 되는 것. 결국 그것이 신년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며 나는 아직도 그것을 찾는 중이다.
그런데 그게, 없다, 보이지 않는다. 아아, 하지만 우리에겐 사랑이 있어. 사랑만큼은,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다든지, 판도라의 상자엔 희망이 남아 있었어류의 이야기는 쌔고 쌨지만- 뭐야, 그건 민망하잖아. 포대기에 싸여, 킥킥거리는 등 뒤의 웃음에 대해, 나는 여전히 할말이 없다. 자꾸만 나는, 작고 약해져 간다. 마이크로, 소프트다.
채플린은 그래도 좋은 시대에 살았어. <황금광 시대>를 보며 나는 중얼거린다. 죠지아(여주인공)가 모든 걸 해결해주던 시대였다. 우리가, 아직은 사랑을 믿던 시절이었고, 우리에게, 아직은 알래스카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눈보라 속을 헤매는 심정으로 나는 오두막을 찾아 헤맨다. 인터넷의 한켠에는 이런 설교문도 있었다(진짜다). 똥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똥을 안 눌 수는 없습니다. 똥이라… 그것도 중요하지. 점점 거칠어지는 눈보라 속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교회는 많은데, 오두막은 보이지 않는다.
돈으로 안 되는 것.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이 황금광 시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황금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있다면, 그런 게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도 큰 문제가 없는 거라고, 중요한 똥을 누며 나는 중얼거린다. 지난 세기에 우리는 근로자였고, 지난 세기에 우리는 소비자였다. 근로자임과 동시에 소비자인 이유로, 지금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을 찾지 않고선- 우리는, 아마도 이상한 존재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미안하다 친구여. 결국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마감을 어기면서까지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역부족이다. 할리우드에도 레드우드에도 나는 가보았지만, 이 황금광 시대에 황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그런 이유로, 지금 나는 몹시도 민망하다. 민망, 하고, 미안하다. 내 슬픈 친구여. 또 이 글이 그대의 등에 미니미처럼 업혀버릴지 나로선 알 길이 없지만, 2004년의 벽두에 이 얘길 해야만 하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미안하다. 하지만 당신이, 7시에 일어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른 이유는 알 수 없고, 지금이 7시다. 그래서다. 박민규/무규칙이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