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솔로몬은 악령들을 모두 불러모아 놓고, 그들의 목에 반지로 인장을 찍어 자신의 노예임을 표시했다. 한번은 그가 요르단에서 목욕을 하던 중 그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은 어느 어부가 잡은 물고기의 뱃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어부가 그 반지를 찾아 솔로몬에게 돌려주기 전까지 솔로몬은 그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반지의 제왕>이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서양 문명에서 양지에 해당하는 기독교나 헬레니즘 전통과는 다른 음지의 전통, 바로 비학(秘學: 오컬티즘)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비학은 문자 그대로 신비 혹은 초자연적 현상을 탐구, 활용하는 것으로, 마법, 연금술, 점성학, 강신술, 관상학, 수비학(數秘學), 유대교 신비주의(카발라) 등을 모두 포괄한다. 기독교 전통에 의해 이단시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그 자세한 전모를 가늠하기도 힘들다.
그 생애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저자는 19세기 후반 20세기에 걸쳐 유럽 오컬티즘 운동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비학을 과학과 합리성의 눈으로 재단하지 않으며 비학의 세계를 ‘믿는’ 입장이다. 그 점을 감안하고 읽으면 이 책은 서양 문명의 또 다른 면모에 관한 진지한 교양서로도, 350여 점의 도판을 통해 도상학 자료로도 읽을 수 있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의 로고는 머리는 여자이고 몸통은 물고기인 여신 사이렌을 담고 있다. 그 로고의 마력 덕분일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이렌에 홀리기라도 한 듯 스타벅스를 드나든다. 사이렌은 마법사들이 즐겨 사용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좀 더 학문적인 관련 도서를 읽고 싶다면 이종흡의 <마술 과학 인문학>(지영사)이, 도판이 많은 책이 좋다면 ‘비밀언어 시리즈’(문학동네) 가운데 <별들의 비밀>, <영혼의 비밀>, <상징의 비밀>이 있다. [그리오 드 기브리 지음, 임산 외 옮김, 루비박스 펴냄]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