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와 만화의 결합 <루니툰: 백 인 액션>이 놓친 것
<루니툰> 시리즈는 1960년대에 끝났지만, 벅스 버니, 대피 덕, 포키 피그와 같은 스타들의 명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루니툰> 시리즈는 텔레비전을 통해 끝도 없이 방영되며 새로운 팬들을 얻어갔고 스타들의 명성은 늘 신선했다. 그렇다면 워너사에서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려고 시도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은 단편 주인공들인데, 일반 극장용 단편애니메이션은 거의 사멸하다시피한 장르이다. 그렇다고 장편을 만들자니 셀애니메이션영화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고 또 이들은 장편 이야기엔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루니툰: 백 인 액션>은 그 해결책이었다. <루니툰>의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대신 그들이 나오는 실사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워너가 <스페이스 잼>에서 이미 한번 시도한 적 있는 이 방식은 두 가지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기원은 모두 한 사람, 스티븐 스필버그로 연결된다.
1980년대 말, 스티븐 스필버그는 게리 K. 울프라는 작가가 쓴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라는 제목의 페이퍼백 추리소설을 영화화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울프의 소설은 평범한 하드보일드 탐정물이었지만 한 가지 특이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험프리 보가트와 같은 실존인물들과 만화 캐릭터들이 공존했다. 울프가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건, 이 이야기가 활자매체인 책보다는 영상매체인 영화에 더 어울린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였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감독하에 만들어진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성공작이었다. 그건 저메키스의 빛나는 코미디 감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리처드 윌리엄스라는 걸출한 애니메이터의 공로이기도 했다. 그는 순전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2차원의 납작한 캐릭터들을 3차원의 실사세계에 어울리게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윌리엄스가 그린 캐릭터들은 평면 그림의 과장과 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럴싸한 3차원의 착시도 연출해낼 수 있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실사와 만화의 결합이라는 기술적 시도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쿨 월드> <스페이스 잼> <록키와 불윙클>처럼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섞은 영화들이 제작되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텔레비전물, 광고물들이 만들어졌다. 오늘 이야기할 <루니툰: 백 인 액션>도 그런 시도들 중 하나이다.
부서지고 재조립된 <루니툰>의 전통
그러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결합을 창조한 것은 아니었다. 이 기술적 실험은 사실 애니메이션영화라는 장르가 막 시작했을 무렵부터 존재했다. 월트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로 유명해지기 전에 앨리스라는 소녀를 등장시킨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단편들을 만들어왔다. 어느 정도 기술이 성숙해지자 영화사들은 자사의 애니메이션 스타들을 자기네들이 만든 영화들에 출연시켰다. MGM에서 만든 뮤지컬영화 <닻을 올려라>(Anchors Aweigh)가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서 진 켈리는 <톰과 제리>의 제리와 춤을 춘다. 켈리는 이 경험이 마음에 들었는지 에서 애니메이션과의 댄스를 다시 시도한다. 좀더 막강한 스타진을 가지고 있던 워너브러더스에서도 여러 편의 시도가 있었는데, 벅스 버니가 카메오로 출연하는 도리스 데이 주연의 뮤지컬 가 그들 중 하나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혁명적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양적인 면만 따진다면 할리우드는 그 이전에도 상당한 수의 실사·애니메이션 합성영화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서 정말로 중요했던 건 기술적 시도가 아닌 그 스타일이었다. 윌리엄스의 실험은 분명 가치가 있는 것이었지만 그의 테크닉은 다른 방식으로도 쉽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된 <록키와 불윙클>은 얼핏 보면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처럼 셀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결합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컴퓨터그래픽이다. 컴퓨터그래픽의 발달로 충분한 인력과 돈만 있으면 마음먹은 것을 무엇이든 시각화할 수 있는 시대에 윌리엄스의 소박한 수공업 테크닉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블루스크린이 블록버스터영화의 필수도구가 된 21세기 초의 할리우드에서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건 아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에 나오는 골룸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더 정교화된 로저 래빗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골룸과 같이 화면을 나누어쓰는 엘리아 우드와 숀 어스틴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밥 호스킨스나 <루니툰: 백 인 액션>의 브랜든 프레이저와 거의 같은 연기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다. <스페이스 잼>이나 <루니툰: 백 인 액션>과 같은 영화들과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한 영화들의 차이점은 전자들이 애니메이션을 사실로 위장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다루는 편리한 방식의 창출해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린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제작 총지휘를 맡은 스필버그의 다른 애니메이션 시리즈들과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연관성을 파헤칠 필요가 있다. 그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성공 이후 만든 텔레비전 시리즈, 특히 <타이니 툰 어드벤처>와 <애니매니악스>는 스필버그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유산을 텔레비전에서 재활용하려는 시도였다고 생각해도 된다. <타이니 툰 어드벤처>에서 스필버그는 <루니툰> 캐릭터들에 대한 거대한 오마주를 시도했다. 이 시리즈의 무대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툰타운과 거의 같은 곳인 애크미 동산(Acme Acres)이고 캐릭터들은 애크미대학(Acme Acres Looniversity)에 다니는 어린 만화 캐릭터들이다. 오리지널 루니툰 캐릭터들을 좀더 어리게 만들고 성별을 다양화하고 약간의 정치적 공정성을 첨가한 이 캐릭터들은 모두 철저하게 <루니툰> 전통을 이해하고 있다. 사실 벅스 버니나 대피 덕과 같은 클래식 주인공들은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캐릭터들이 실사와 애니메이션 세계를 오가는 것처럼 <타이니 툰 어드벤처>의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허구와 사실 사이를 오간다. 과거의 <루니툰>은 그들에게 현실 세계의 과거이기도 하지만 필름 도서관에서 구해볼 수 있는 허구이기도 하다. 벅스 버니는 그 캐릭터로서 실존인물이지만 동시에 영화스타이기도 하다.이들의 뒤를 이은 <애니매니악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초기 <루니툰> 캐릭터들을 흉내낸 와코, 야코, 도트 워너 남매는 너무 파격적이어서 필름들이 공개되지 못하고 워너브러더스 급수탑에 감금되었다가 90년대의 현대가 되자 다시 탈출한 말썽꾸러기들이었다. <타이니 툰 어드벤처>가 존경스러운 스승들을 모방하고 따라했다면, <애니매니악스>의 워너 남매들은 가짜 역사를 만들고 그 과거를 현대와 결합시켰다.
<루니툰: 백 인 액션>은 스필버그의 품 안에서 창조된 것이나 다름없는 애크미 동산과 툰타운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물론 우린 조 단테가 한동안 ‘스필버그 사단’이라는 그룹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 영화에서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은 캐릭터이자 그를 연기하는 같은 성격의 배우들이다. 그들은 모두 <타이니 툰 어드벤처>나 <애니매니악스>에 나올 법한, 구식 스튜디오 시스템을 흉내내고 있는 워너브러더스사의 고용 배우들이고 브랜든 프레이저와 같은 실존 인물들이나 프레이저가 연기하는 DJ와 같은 현실세계의 가상 인물들과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루니툰>의 전통은 부서지고 재조립되며 복잡한 풍자와 패러디로 가득 찬 장편영화의 부속품이 된다. 이로써 어떻게 하면 벅스 버니와 대피 덕이 주인공인 7분짜리 액션의 불연속성을 장편영화의 플롯과 결합시키고 극장용 셀 애니메이션이라는 인기 잃은 구경거리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문제는 형식적으로나마 해결이 된다.
무게 잃은 실사, 순수성 잃은 애니
그러나 그것이 완성도로 연결되었는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루니툰: 백 인 액션>은 성공적인 전작들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진지함이다. 여기서 진지함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해야 할 듯하다. 워너브러더스의 클래식 걸작 단편들은 모두 지독하게 진지한 작품들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건 이 만화들의 어처구니없는 부조리함과 우스꽝스러운 폭력, 인용들이 모두 단도직입적인 진지함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정도는 덜했지만 <타이니 툰 어드벤처>와 <애니매니악스> 역시 진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경박한 농담을 던지고 생각없이 옛 캐릭터들을 현대화시키는 동안에도 <시민 케인>과 <우주의 침입자>와 같은 고전들을 전문 영화사가 수준으로 패러디하고 초창기 워너브러더스의 잊혀진 캐릭터들을 재발굴하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경쾌한 어린이 시리즈들은 어떻게 보면 <루니툰>과 스튜디오 시대의 할리우드에 대한 심각한 영화비평서와도 같았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역시 진지한 영화였다. 영화는 클래식 만화주인공들을 총동원해 어처구니없는 농담들을 터뜨리는 동안에도 훌륭한 필름누아르의 골격을 유지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코미디로서도 진지했고 필름누아르로서도 진지했다. 하지만 <스페이스 잼>에서 망가진 <루니툰>의 캐릭터들에게 원래의 모습을 돌려주려고 했던 조 단테의 시도는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무너지고 만다. 단테가 성공적으로 두 장르를 결합했다고 자부했을 그의 형식이 그런 진지성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실사 부분은 <루니툰>을 흉내내는 동안 고유의 무게를 잃었다. 애니메이션 부분은 실사에 삽입되는 동안 원래의 순수성을 잃었다. 그러는 동안 둘은 모두 진지한 패러디의 가능성을 잃었고 리처드 윌리엄스식으로 입체화된 <루니툰>의 캐릭터들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들의 모사가 된다. 앞에 언급된 영화들은 모두 이런 문제점을 교활하게 피한 작품들이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와 <애니매니악스>는 오리지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유명한 캐릭터들을 조연이나 카메오로 배치했다. <타이니 툰 어드벤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도직입적인 패러디였다.
<루니툰> 캐릭터들은 과거의 명성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옛 명성과 스타일의 모사 이상이 필요하다. 전통의 회복이나 새로운 스타일의 발굴 어느 쪽이 나서야 할 때다. 슬프게도 <루니툰: 백 인 액션>은 어느 쪽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