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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신작 <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
김혜리 2003-12-30

배우 잭 니콜슨은 할리우드가 공인하는 능구렁이 바람둥이다. 그런 잭 니콜슨이 서른 미만 여성만 전문으로 상대하는 60대 플레이보이로 분한다면 원맨쇼를 상상하는 것도 당연하다. 혹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바웃 슈미트>에서 그가 연기한 노년의 개과천선을 내심 가증스러워했던 관객이라면 “이번에는 연기할 필요도 없겠네!”라는 심통맞은 코멘트를 덧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은 원맨쇼가 아니라 엄연히 두 사람의 노련한 선수,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의 혼성 듀엣이다.

잭 니콜슨이 분하는 해리 샌본은 훈장을 수집하듯 젊고 아름다운 여자만 골라 데이트하는 62살의 음반제작자. 하지만 주인의 리비도를 감당하기에 지친 해리의 몸은 최악의 시점에 배반을 저지른다. 근사한 주말을 위해 방문한 애인 어머니의 집에서 최고로 로맨틱한 순간에 심장발작을 일으킨 것. 하지만 해리의 일생일대 위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닥친다. 무기력한 자신을 보살펴주는 여자친구의 어머니 에리카(다이앤 키튼)를 올려다보는 동안, 해리의 아픈 심장에는 깊은 감정이 싹튼다. 설상가상으로 왕진 온 젊은 심장전문의 줄리안(키아누 리브스)이 에리카의 매력에 사로잡히면서 모처럼 시작한 해리의 참사랑은 누가 봐도 불리해 보이는 경쟁에 돌입한다. 연애는 오래전에 은퇴했다고 믿어온 에리카의 인생 역시 두 남자의 갑작스런 애정공세에 대책없이 흔들린다.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베이비 붐> <신부의 아버지>에서 다이앤 키튼에게 매료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이혼한 50대 극작가로 남자없이 사는 일에 숙련된 여성 에리카 역할을 특별히 다이앤 키튼을 위해 썼다. 1981년 <레즈> 이후 처음으로 잭 니콜슨과 재회한 다이앤 키튼은 탁월한 코미디언으로서 솜씨를 유감없이 겨뤘다는 소문. 두 대가의 화음은 더할 나위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잭 니콜슨이 “신사답게” 레이디 퍼스트를 선언하고 다이앤 키튼에게 가장 빛나는 자리를 양보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평이다.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에리카의 자매인 여성학 교수로 분하고 <매트릭스>에서 막 탈출한 키아누 리브스가 의사 줄리안을 맡아 대선배들과의 삼각관계에 감히 뛰어든다. 대충 봐도 ‘배우의 영화’지만, 격조한 노라 에프런의 자리를 낸시 마이어스가 얼마나 채워낼지도 구경거리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