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
<소년탐정 김전일>이 무대에서 사라진 지 3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게 짜여진 범죄를 명쾌하게 해결해온 소년 김전일의 명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의 팬들은 괜스레 ‘김전일 음모론’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책가방 숫자보다 시체 숫자가 많아 보이는 학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연쇄 살인범의 밀집도, 탐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최대한의 배려를 한 것이 아니면 무의미할 정도로 복잡한 트릭. 혹시 이 범죄들의 배후에 김전일 자신이 개입되어 있는 게 아닐까? 왜 그가 가는 곳마다 살인이 줄을 잇는가? 물론 작품 내의 ‘김전일 배후론’은 시니컬한 가설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품 바깥에서는 양상이 다르다. 우리는 ‘김전일 바이러스’라는 강력한 균이 수많은 만화가들을 감염시켜 살인의 양산체제를 가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김전일의 신화를 함께 만든 창작자들 역시 바이러스의 항체를 만들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둘로 나뉘어져 추리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림 작가인 사토 후미야, 그리고 초기에 트릭 메이커로 참가했다가 후반에 스토리도 쓰게 된 아마기 세이마루는 <탐정학원 Q>의 장기 연재 체제로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메인 스토리 작가이며 <소년탐정 김전일>의 감수성을 결정하는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이는 가나리 요자부로가 새로운 그림 작가 야마구치 마사카즈와 팀을 이루어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서울문화사)로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
어리숙한 표정에 몰상식한 패션 감각,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가 일쑤. 그러나 ‘사건’을 만나면 안경을 반짝거리며 번개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민속학자 야쿠모는 어느 모로 보나 김전일의 일족이다. 어깨 정도 내려오는 단발머리를 고무줄로 살짝 묶은 헤어 스타일에 ‘답지 않게’ 미녀들의 연이은 대시를 받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을 아류의 증거로 수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야쿠모가 김전일 전성기의 몇몇 에피소드에 필적할 만한 사건들을 거의 그때 그 방식으로재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민속학자인 야쿠모는 전설과 민담에서 태어난 기묘한 사건들을 방대한 민속학적인 지식과 명쾌한 추리력으로 해결해나간다. 대나무 숲에서 발견된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어 달로 날아간다는 카구야 히메 전설은 ‘카구야 히메 콘테스트 연쇄 살인사건’으로, 홋카이도 아이누 전설의 소인 코로보쿠루는 양심적인 고고학자의 고문서 위조사건으로 새 옷을 입는다. 야쿠모는 미스터리 액션 장르에서 오랫동안 이름을 떨쳐온 고고학자들(인디아나 존스, 마스터 키튼, 라라 크로프트)의 뒤를 잇고 있지만, ‘육각촌 살인사건’, ‘무구촌 살인사건’에서 가장 짜릿한 살인 트릭을 펼친 김전일을 재현하고 있다. 3권의 ‘야마우바 살인사건’은 김전일의 걸작 에피소드에 필적할 만큼 치밀하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