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영원한 현역’ 누벨바그 시네아스트, 클로드 샤브롤 회고전
홍성남(평론가) 2003-12-11

은밀한 욕망의 해부학

클로드 샤브롤은 자신처럼 시네마테크의 쥐,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를 거쳐 영화감독이 된 동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장편영화를 만든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의 첫 영화 <미남 세르쥬>(1958)는 프랑수아 트뤼포가 꿈꿨던 ‘내일의 영화’, 혹은 당시 젊은 세대들이 열망했던 ‘젊은 영화’의 분명한 본보기였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불완전한 세계를 바라보는 영화였고 리얼리티를 간직한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재발견하려 시도하는 영화였다. 굳이 순서를 따진다면, 샤브롤은 첫 번째 누벨바그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누벨바그 영화를 통해 동료들에게 누벨바그적인 영화를 미리 보여준 것만이 아니라 보조금을 얻어내거나 동료들을 영화 제작에 끌어들이는 등의 이런저런 수완을 적극 발휘해 경제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적절한 실례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아내가 받은 유산을 가지고 자신의 영화사를 차릴 수 있었던 샤브롤은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필립 드 브로카 같은 동료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의 손길을 주기도 했다. 종종 간과되고 있긴 하지만 샤브롤이 누벨바그를 추동해나가는 데 묵직한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사람들이 누벨바그의 중심 동인이 되었던 이 사람이 ‘추락’했다거나 혹은 ‘변절’했다고 말하는 상황은 샤브롤의 계속되는 실패와 함께 찾아왔다. 샤브롤의 첫 두 영화인 <미남 세르쥬>와 <사촌들>(1959)은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모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로 1962년까지 그는 여섯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다소 무딘 것과 걸작임에 분명한 것이 뒤섞여 있는 이 영화들은 하나 같이 흥행에 실패했고 거의 모두 (어떤 영화는, 이를테면 <착한 여자들>(1960)의 경우에는 부당하게도) 비평의 냉대를 받았다. 영화감독으로서 살아남기를 택했던 샤브롤은 이제 제작자의 확실한 고용감독이 되어 개인적인 터치는 거의 사라져 무미한 ‘상업영화’들을 만들었다.

샤브롤, 태만한 다산성?

미국의 영화평론가인 앤드루 새리스가 “샤브롤은 어느새 누벨바그의 잊혀진 인물이 돼버렸다”고 쓴 것은 1967년이었다. 사실 여기에서 보듯, 당시 한창 내리막길을 걷는 듯 보이던 샤브롤의 행보를 보고 그 다음해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샤브롤은 1968년부터 새리스의 단언을 비웃는 듯한 수작과 걸작들을 만들어내며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흔히 ‘엘렌느 사이클’(주로 샤브롤의 두 번째 부인인 슈테판 오드랑이 연기하는 엘렌느라는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물로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불리는, <암사슴>(1968)부터 <밤이 오기 직전>(1971)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영화들은 샤브롤의 필모그래피에서 핵심에 해당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개별적인 성취도로 따지자면 여기에 속하는 영화들이 초기 걸작 <착한 여자들>이나 후기 걸작 <의식>에 못 미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이클 안에서도 여전히 태작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영화들은 그것들이 하나의 어떤 원형에서부터 변주된 것인 양 서로 묶여져 있다. 당연하게도 이것들은 샤브롤적인 어떤 세계를 잘 요약해준다.

전형적인 샤브롤의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가 한 말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는 어떤 글에서 샤브롤을 가리켜 “유리상자 안에다가 한 무더기의 곤충들을 집어넣고는 때로는 놀라워하고 또 때로는 두려워하며 가끔은 즐거워하면서 그 작은 피조물들의 행동 패턴들을 관찰하는 어린애”라고 표현했다. 아마도 여기서 샤브롤을 바라보는 파스빈더의 비아냥을 살짝 덜어내면 그런 대로 샤브롤의 영화세계가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낸다. 우선 유리상자 안에 갇힌 곤충들이란 무언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부르주아들이라고 보면 된다. 샤브롤은 기본적으로 거리를 두면서도 그렇다고 완전히 감정이 실리지 않은 것은 아닌 그런 시선으로 이들의 행위들을 꼼꼼하게 바라본다. 그들의 행위들로, 즉 식사하기로 대표되는 일상적이면서 의식이 되는 행위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 배후에서 열정의 흐름이 전개되며 그리고 살인(!)이 일어나면서 샤브롤의 세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동정심이 깃든 비판적 우화

물론 이 가운데 살인 혹은 범죄는 특히 중요한 구성 행위이다. 이쯤 되면 샤브롤의 별명이 ‘프랑스의 히치콕’임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로메르와 함께 중요한 히치콕 비평서도 썼고 자기 영화들 안에서 가끔 히치콕을 언급하기도 하는 그가 히치콕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는 일이다. 일례로 샤브롤의 영화들에서 종종 발견되곤 하는 ‘죄의 전이’ 같은 것은 분명히 히치콕에게서 전수받은 개념이다. 예컨대, <도살자>(1969)의 후반부에서 결국 연모하던 여선생 엘렌의 사랑을 얻지 못한 연쇄살인자가 그녀 앞에서 자신의 배를 찌르면서 이제껏 그가 저지른 살인은 고스란히 엘렌의 몫으로 떠넘겨진다. 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의 이같은 자리바꿈은 샤브롤의 영화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샤브롤을 두고서 히치콕의 충실한 추종자라고 보기는 어렵다(샤브롤의 영화에는 프리츠 랑의 영화로부터 물려받은 운명의 힘에 대한 해석도 있고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로부터 배운 듯한 가정 내의 매끄러운 듯 질식할 듯한 분위기가 존재하며, 빌리 와일더의 영화들에서 두드러지는 냉소주의도 배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영화는 히치콕의 영화에서처럼 범죄를 매개로 생겨난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긴장감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 샤브롤의 세계에서 살인은 계획되었다기보다는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때가 많으며 따라서 그것의 동기를 파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정열의 문제가 얽혀 결국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나 혹은 그에 따르는 반응과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좀더 유용한 관찰의 태도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샤브롤은 부르주아적 가치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자라고 보기도 하지만 실은 그의 영화들은 그렇게 부르기에는 좀더 미묘하거나 모호하다(그래서 보는 이에 따라서 매력적이거나 아니면 불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부정한 여인>(1969)에서 자기 내부의 비밀스런 충동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아내의 정부를 죽인 샤를르를 바라보는 샤브롤의 시선에는 분명히 동정심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이것은 어떤 계급의 파멸에 대한 비판적 우화 이상의 것이 된다.

샤브롤은 “전체로서의 내 영화들을 가지고 하나의 개인적 비전에 대한 정확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초콜렛 고마워>(2000)나 <악의 꽃>(2003) 같은 최근작들에서도 그가 여전히 부르주아 가족 내부에 은밀하게 놓여 있는 질투와 정열과 비밀의 덫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을 보면 이제 그의 필모그래피는 한편의 영화로서 모습을 드러낼 때도 되었다. 다시 말해 그는 원하는 대로 자신의 색깔을 가진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가 이것을 범죄영화라는 대중영화의 장르 안에서 이루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샤브롤은 히치콕, 하워드 혹스, 니콜라스 레이처럼 자기 세대가 흠모했던 할리우드의 ‘작가’들에 가까운 모습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젊은 날 샤브롤을 위시해 그의 동료들이 경배했던 작가들은 모두가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대중영화를 만들면서도 그 안에다가 자기만의 인장을 찍었던 감독들이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샤브롤은 누벨바그 동료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젊었을 적 존경했던 영화감독의 이미지에 스스로를 더 가까이 위치시킨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세계가 히치콕이나 혹스나 레이의 세계에 대적할 만큼의 두께를 가졌는가를 논외로 친다면 말이다.

◆추천작 8편

미남 세르주 Le Beau Serge/ 1958년/ 흑백/ 93분

샤브롤의 첫 번째 영화로 누벨바그의 신호탄이 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이자 촬영장소인 사르당이란 마을은 샤브롤이 실제로 자란 곳이다. 그런 만큼 영화는 샤브롤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청년 프랑수아는 고향에 돌아와 옛 친구인 세르주가 완전히 피폐해진 것을 보고 놀란다.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 사제의 일기>를 샤브롤식으로 개작한 영화처럼 보이는 <미남 세르주>는 일종의 파워게임을 벌이는 완전히 상반된 성격의 두 인물을 그리면서 형이상학적인 구원과 희생을 이야기한다.

사촌들 Les Cousins/ 1959년/ 흑백/ 110분

샤브롤의 두 번째 영화인 <사촌들>은 이전작인 <미남 세르주>와 대칭을 이루는 영화다. 이번에는 시골 청년이 도시를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온 시골 청년 샤를르는 역시 법률공부를 하는 사촌 폴의 집에서 지내게 되면서 자신과는 달리 데카당스적인 삶을 누리는 폴에게 매료된다. 두 인물의 관계와 마음 상태를 빼어난 미장센으로 잘 표현한 영화로 “뉴 웨이브의 가장 대표적이고 원숙한 영화”(찰스 포드)라는 평을 들었다. 당대 누벨바그 영화로는 트뤼포의 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흥행성적을 거운 성공작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암사슴 Les Biches/ 1968년/ 컬러/ 100분

1964년부터 제작자의 요구에 따른 ‘상업영화’만을 만들었던 샤브롤은 나이 40쯤이 되면 자신의 진짜 영화경력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에 만든 <암사슴>은 바로 그런 그의 자기 암시를 실현시켜준 영화다. 샤브롤의 걸작 가운데 하나인 이 영화를 시작으로 그는 잇따라 수작과 걸작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먼저 연인 사이가 된 두 여자와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남자 사이의 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자기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의 그것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샤브롤의 <페르소나>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부정한 여인 La Femme infidele/ 1969년/ 컬러/ 98분

샤브롤 영화에서 두 사람 사이, 혹은 가족 내부로 들어오는 ‘침입자’는 사건의 촉매자가 되곤 한다. 그건 <부정한 여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샤를르와 엘렌의 행복한 결혼생활 사이로 침입해온 엘렌의 정부는 샤를르로 하여금 그 정부를 죽이는 살인자로 만들어버린다. 영화는 침입자 때문에 깨어진 결혼생활의 위기가 해결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히치콕에게서 배워 줌인 트랙아웃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샤브롤이 비주얼만으로도 많은 것을 보여주는 능력이 있는 영화감독임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야수는 죽어야 한다 Que la bete meure/ 1969년/ 컬러/ 113분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은 샤를르는 아들을 죽인 자를 찾겠다는 일념에 불탄다. 영화는 샤를르가 결국 아들을 죽인 ‘야수’의 집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부정(父情)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제임스 모나코가 “질식할 것 같은 숨막힘”이 있다고 말한 이 영화는 내러티브 구성 면에서 샤브롤의 중기 영화들 가운데 가장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다.

도살자 Le Boucher/ 1969년/ 컬러/ 90분

경제적이게도 단 두명의 주인공 캐릭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화 <도살자>는 이른바 ‘엘렌느 사이클’에 속하는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고 또 가장 유명한 것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영화는 시골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엘렌과 그녀를 연모하는 푸줏간 주인 포폴 사이의 관계를 그려나간다. 한편 마을에는 비극적인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엘렌은 그 범인이 포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골 마을의 기후와 템포, 분위기가 영화 전체의 리듬과 훌륭하게 어울리는 샤브롤식의 ‘이상한’ 로맨스영화.

여자 이야기 Une Affaire de femmes/ 1988년/ 컬러/ 108분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영화로 나치 점령기에 돈을 벌기 위해 불법 낙태시술을 하다가 사형을 당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샤브롤식의 범죄영화와 모성 멜로드라마를 한데 결합한 듯한 영화로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는 접근 방식이 돋보인다.

위페르의 연기는 여기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의식 La Ceremonie/ 1995년/ 컬러/ 111분

<카이에 뒤 시네마>로부터 “오랜만에 나온 가장 위대한 프랑스영화”라는 절찬을 받은 <의식>은 샤브롤의 경력을 통틀어서 최고작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한 영화다. 영화는 한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에서 벌어지는 부르주아와 하녀 사이의 이야기를 통해 일종의 조직화하지 않은 계급 투쟁, 라이프 스타일인 동시에 파시즘의 산물로서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같은 정치적인 이슈들을 흥미진진하게 극화했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