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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고의 시적 리얼리즘의 미학,<아탈랑트>
김용언 2003-11-26

<퐁네프의 연인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당황해했다. 드니 라방이 줄리엣 비노쉬를 안고 퐁네프에서 추락할 때만 해도 그건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비극적 결말이구나, 싶었는데 그 둘이 난데없이 수면 위로 떠올라 배 위로 올라가 질주하는 걸까? 그 이상하고 황당한 해피엔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건가, 다들 난처해했다. 답은 장 비고의 <아탈랑트>였다. 레오스 카락스는 그렇게 ‘무리한’ 결말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장 비고의 세례를 받았음을 고백하고 싶었던 거다. 레오스 카락스뿐 아니라 프랑수아 트뤼포와 장 뤽 고다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오타르 요셀리아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감독들이 열렬한 사랑을 고백했던 그 영화, 그 감독. 장 비고의 <아탈랑트>가 그동안 수없는 훼손과 삭제를 거치며 제멋대로의 판본으로 떠돌아다니던 중 엄격한 자료와 해석에 의거하여 1934년 원작에 가장 가깝게 복원된 판본으로 드디어 한국에 출시되었다.

시골 소녀 줄리엣과 ‘아탈랑트’호의 젊은 선장 장이 결혼식을 올리고, 아탈랑트호의 선원인 늙은 쥘과 꼬맹이 소년, 여섯 마리의 고양이와의 공동체적인 삶이 시작되고, 줄리엣과 장은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사소한 일로 죽일 듯이 싸워대고, 쥘은 그 광경에 질투했다 사랑스러워했다 하면서 시끄러운 노래를 부르고, 고물장수 라스푸틴이 가끔 신기한 고물을 팔기 위해 들르고, 줄리엣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파리는 여전히 미지의 장소로 남아 있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삶이 그렇게 흘러간다.

아탈랑트호는 주욱, 수로를 따라 미끄러진다. 가끔 아탈랑트호를 스쳐가는 거룻배 위에 유령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처럼 서 있는 할머니와 손녀가 보일 때도 있다. 사랑이 갑작스런 질투와 증오로 돌변할 때가 있다. 부드럽게 매만지던 애무의 손길이 분노의 폭력으로 돌발적으로 폭발할 때가 있다. 전세계를 유랑했던 쥘 할아버지의 방 안에 가득한 기기묘묘하고 이국적인 잡동사니들처럼 삶은 그렇게 신기한 광채로 한순간 충만할 때가 있다. 파리의 반짝거리고 경박한 아케이드처럼, 쥘 할아버지의 신기하고 조그만 방처럼 그렇게 삶은 비의와 카니발적 기쁨, 경솔한 매력으로 직조되어가면서 정처없이 부유한다. “파리, 파리… 매혹적이지만 저주받은 도시… 대도들의 사랑을 받는 곳, 진정한 마녀… 신비스러운 악의 도시… 연인들과 대도에게 사랑받는 곳….” 파리뿐 아니라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 29살에 결핵으로 죽은 장 비고는 그 모든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다.

<아탈랑트>는 그야말로 영화라는 매체가 안겨줄 수 있는 최상의 매혹을 보여준다. 그동안 수없이 학대당했던 필름 위에 아직도 기적처럼 잔존해 있는 이미지들의 연속은 그렇게 아직도 강력한 아우라를 발생시킨다. 그토록 부서질 듯 연약하고 무방비 상태에 처해 있던 필름이, 강물 위를 흔들흔들 지나가며 온갖 마법 같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던 카메라의 놀라운 프레이밍(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지가 베르토프의 동생 보리스 카우프만이다)에 의해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적이고 초현실적이면서 때때로 난폭한, 그리하여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어리석은 소망까지도 실현시켜주는 마법을 부리고야 만다. 영화가 시와 그림과 음악과 서로 다투지 않고 이렇게 새로운 하나의 조형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진심으로 깨닫게 하는 작품. 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당신도 레오스 카락스처럼, 혹은 14살 때의 프랑수아 트뤼포처럼, “<아탈랑트>가 내게로 뛰어들었다”고 직감했던 오타르 요셀리아니처럼 사랑에 빠지고야 말리라. 김용언 mayham@empal.com

L’Atalante | 1934년 | 감독 장 비고출연 디타 파를로, 미셸 시몽, 장 다스테장르 드라마 | DVD 화면포맷 1.33:1오디오 돌비디지털 2.0출시사 스펙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