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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무간도 2: 혼돈의 시대>
2003-11-25

지난세기 마초들의 마지막 서사극

지난해 개봉한 <무간도>는 홍콩 누아르가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잔잔한 충격이었다. 흰 비둘기, 긴 코트자락 같은 장식물을 많이 걷어낸 사실적인 연출이 돋보였지만, 그럼에도 관계와 사건을 무리할 만큼 직접 연결시키고 거기서 감정을 부풀려 끌어내는 <무간도>는 오우삼·주윤발 시대 누아르의 자장 안에 있었다. 그래서 홍콩 누아르의 부활이라기보다, 일회성 재활용에 가까와보였다. 더욱이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죽으면서 끝난 이 영화를 두고, 멋진 속편을 기해하긴 힘들었다. 그러나 <무간도 2: 혼돈의 시대>는 달랐다. 전편보다 더 사실적인 질감으로, 딱히 누구 하나를 내세우기 힘든 다수의 주인공들이 모두 캐릭터가 살아나면서 이전의 홍콩 누아르와는 사못 다른 드라마를 구축한다.

<무간도 2…>는 전편보다 앞선 1993년부터 97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삼합회의 두목이 암살되고, 암흑가는 재편기를 맡는다. 살해된 두목의 아들 예영호는 방계 조직의 두목들을 달래듯 껴안으면서 조직을 추스리고는 자리가 잡히자마자 모두 제거하는 복수극을 펼친다. 전편에서 양조위가 연기했던, 암흑가에 침투한 경찰 진영인은 예영호와 배다른 동생이라는 인연을 가지고 예영호를 보좌하게 된다. 진영인과 반대로 암흑가에서 경찰조직으로 침투한 (전편에서 유덕화가 연기한) 유건명은 삼합회 방계조직의 하나를 이끌고 있는 한침의 지시를 받으며, 예영호의 복수로부터 한침을 지켜낸다.

음모와 배신으로 가득한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건 여느 홍콩 누아르와 마찬가지이지만, <무간도 2…>에선 더 이상 의리를 내세우지 않는다. 음모와 배신은 세상의 질서이고, 성품이나 의지에 관계없이 그 안에 사는 남자들을 타락시킨다. 이 영화에선 특별히 천성이 악한 이가 없다. 다만 악인으로 돼어갈 뿐이다. 명분과 의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가족이든 조직이든 공동체는 희망이 아니라, 조건이고 짐이다. 전편과 달리 2편에 오면 그 풍경이 정말 지옥같다.(제목 ‘무간도’는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고통스런 지옥이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진영인이나 그를 암흑가로 보낸 황국장에게선, 어느새 암흑가와의 전쟁이 삶이 돼버린 이들의 어두움과 황폐함이 배어나온다. 그들도 지옥을 산다.

<무간도 2…>는 홍콩 누아르보다 <대부>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배타적 혈연·지연 공동체의 생존전략이 내부 구성원을 망가뜨려가는 구조를 20세기말 홍콩으로 끌고와, 지난 세기 마초들의 마지막 서사극을 만들어간다. <대부>보다는 허구적이지만, 그래서 <대부>보다 어둡고 춥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그곳에서 배신하지 않는 자는 둘이다. 황국장과 진영인 두 경찰관이 서로 믿는 건 의리 때문이 아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젊을 때 스스로에게 다졌던 다짐이 일치하는 걸 확인하고부터 둘은 별다른 언약 없이 같은 길을 간다. 유치하고 감상적인 그 말과 설정이 가슴에 파고들게 하는 이 영화는 역시 홍콩 누아르다. 양조위, 유덕화를 빼고 출연진과 스탭이 전편과 같다. 12월5일 개봉. 글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