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이미지 기반 대중문화의 차세대 콘텐츠
지난 11월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코엑스 컨퍼런스센터 402호에서 대규모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책임을 맡고 있는 연구소에서 몇 개월간 정성을 들인 행사였다. 가장 공을 들인 지점은 섹션의 구성이다. 1주제인 만화와 이미지는 만화의 미학적 특징을 고민해보는 자리였고, 2주제인 만화의 진화는 디지털과 만화가 만나는 만화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으며, 3주제인 만화산업의 세계화는 다양한 문화권의 만화교류에 대해 짚어보는 자리였다. 이 주제를 이틀에 걸쳐 각각 4시간씩 발제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이를 위해 벨기에, 프랑스, 미국, 일본, 한국의 연구자와 실무자들이 참여했다. 일본인 발제자 호소가야 아쓰시를 제외한 다른 외국인 발제자들은 모두 한국을 처음 찾았지만 만화에 대한 진지한 열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들 역시 우리의 열기에 화답하듯 열정적으로 발제와 토론에 임해주었다. 주제별로 발제한 대략의 내용과 토론된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읽히는 이미지로서의 만화
첫 주제인 ‘만화와 이미지’에서는 이미지 언어로 쓰인 만화에 대한 미학적 접근방법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온 파리 1대학의 피에르 프레노 드뤼엘 교수는 유럽 만화 전체를 미학적인 방법으로 개관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스위스의 토페르에서 시작해, 명료한 선의 대표주자인 에르제(<땡땡의 모험>)를 중심으로 선의 미학적 의미와 계보에 대해 집중적으로 발제했다. 역시 <땡땡의…> 연구의 권위자답게, 세부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고 명료한 선으로 사물을 묘사하는 에르제의 방식은 하나의 스타일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정리했다. 특히 이처럼 명료한 선의 표현으로 일부를 통해 전체를 보여주는 선의 활용은 일본 우키요에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형식적 유사성을 지적했다.
또 피에르 교수는 에르제에 이르러 유럽 만화에서 ‘한칸의 의미’가 명확히 되었다면서, 한칸은 보완적이고 분절을 통해 연속성을 지니며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포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유럽 만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에르제의 다른 편에는 프랑켕, 지제, 페요(그 유명한 <스머프>의 작가인!), 모리스가 있었다. 이들도 모두 일정하게 에르제적인 ‘명확한 선’을 지닌 작가들이다. 명확한 선과 구분되는 또 다른 방식들로 이탈리아 작가인 휴고 프라트의 흑백의 스타일과 클레어 보르테세의 풍자적인 선(혹은 늘어진 선), 그리고 장 클로드 포레스트의 고전적이며 에로틱한 특징을 뽑았다. 60년대 창간된 만화잡지 <필로트>는 새로운 만화가들을 탄생시켰다.
<필로트>를 통해 활동한 작가로 프레드와 뫼비우스가 꼽힌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주목받는 작가들로 회화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이탈리아 작가인 마토티, 벨기에 작가인 스퀴텐과 피터즈, 그리고 기베르를 소개했다. 피에르 교수는 매우 정열적으로 다양한 도판을 활용해 유럽의 만화사를 에르제의 명료한 선을 중심으로 정리해 주는 ‘명료한’ 강의를 선보였다. 프랑스 출신으로 벨기에에 거주하며 작화작가인 스퀴텐과 공동작업으로 만화, 영화, 전시를 넘나드는 활동을 보여주는 브누와 피터즈는 토페르에서 시작해 크리스 웨어에 이르기까지 서구만화에서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을 들려주었다. 특히 그가 슬라이드로 제공한 풍부한 이미지는 만화에 있어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에 대해 적확한 의미들을 부여했다. 브누아 피터즈는 토론 중에 “만화의 이미지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의 그림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이야기, 연출, 표현을 통해 종합적인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 만화라는 의미였다.
디지털 매체와 만화
둘쨋날인 5일은 오전 9시부터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꽤나 이른 시간이었지만, 150석은 금방 만석을 이루고 입석까지 들어차기 시작했다. 아마 스콧 매클루드의 유명세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전날에 이어 다시 발제에 나선 브누아 피터즈는 윈저 매케이의 만화인 <리틀네모>에 등장한 멀티미디어적 요소와 자신과 스퀴텐의 작업인 <모호한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만화에서 멀티미디어가 어떻게 결합되고 활용되는가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스콧 매클루드는 특유의 유머와 열정으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만화의 대안을 보여주었다. 그는 디지털 매체로 자리를 옮긴 만화는 오히려 만화의 근본적인 특징인 ‘연속성’에 주목하자며, 단순히 음향효과나 움직임이 들어간 디지털 만화는 ‘만화’의 미학적 특징을 저해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오후 주제는 일본 만화가 프랑스에 소개되고, 시장을 확대해가는 역사에 대해 <아니메랑드>의 편집장인 스티븐 페랑의 진지하고도 풍부한 발제가 있었다. 호소가야 아쓰시는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만화에 있어 국제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렇게 ‘만화: 이미지 기반 대중문화의 차세대 콘텐츠’란 제목으로 시행된 국제세미나는 2일 11시간의 장기레이스를 끝마쳤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