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말단직원의 악전고투 영어 정복기를 다룬 <영어완전정복>에는 중요한(?) 순간마다 코미디에 힘을 실어주는 CG와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입에 상추쌈을 한껏 우겨넣던 영주가 소주병 돌리기로 학원행이 결정되자 열심히 반대의사를 우물거릴 때 떠오른 말풍선이 그렇거니와 학원에서 만난 문수에게 푹 빠져 달빛 찬란한 밤하늘을 향해 “아이 러브 유우우∼ 굿 나이트 엘비스으∼” 하고 목청껏 소리지를 때 천연덕스레 나타나던 문자 아이콘들도 재미있다. 아참, 첫 학원 방문날, 수강신청서에 쓰인 ‘본인의 영어 실력은’ 질문에 ‘판정 불가!!!’ 등급을 받게 된 영주의 눈물겨운(실은 웃기면서도 뜨끔한) 레벨 테스트 장면을 빼먹을 뻔했다.
<스타워즈>의 외계인을 닮은 것도 같고, <고스트 버스터즈>의 먹깨비를 오마주한 것도 같은 괴물과 영주의 대결(?)은 <철권>이나 <버추얼 파이터>식의 대전격투 게임으로 진행되는 대표적인 CG장면. 레벨 테스트가 게임 형식으로 그려진 것은 김성수 감독의 아이디어다. CG를 맡은 ‘deepictures’의 대표 윤재훈(33)씨는 “처음엔 좀 다른 기획이었어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와 네오가 도장에서 대결을 벌이듯 산사나 도장에서 대결을 하는 장면은 어떨까 생각했죠. 감독님이 게임 형태로 그리자고 제안하시면서 요즘 세대에겐 게임 화면이 아무래도 눈에 빨리 들어올 거다 하시더라고요”라고 설명한다. 영어에 대한 영주의 강박과 공포가 느껴지는 델타포스 공격장면에서는 창 밖에 비친 거리 전경과 공중을 나는 헬기 등이 FULL-3D애니메이션 영상으로 매끈하게 표현됐다. 모두 deepictures의 솜씨다.
윤재훈 대표는 전에 다니던 직장이 어려워지면서 올해 5월 회사를 설립했고, 그가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에 이어 창립 이후 맡은 두 번째 작품이 <영어완전정복>이다. 전 직장에서는 <품행제로>와 을 맡아서 완성한 경력이 있다. 수입으로 치면 CF쪽이 훨씬 짭짤하지만, 그가 영화에 매진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좋아요.
표현이 방송보다 자유스러우니까 도전정신이 마구 생겨나죠. 프리 단계에서 확실한 CG 컨셉과 분량이 정해지고, 촬영과정에서 이 계획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훨씬 질나은 공정 과정이 될 겁니다. 그땐 우리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한편 제작하고 싶어요.” 스크린쿼터 축소 분위기와 블록버스터영화들의 잇단 흥행 실패 때문일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편당 제작비가 부쩍 줄었음을 느낀단다. 그만큼 CG 비용도 줄어들게 된다고. 현재 마무리 단계인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와 슬슬 손을 대기 시작한 <효자동 이발사> <돌려차기>가 끝나고 나면 외국에서 주문을 받아 제작수량을 늘릴 계획이다. 첫 번째 타깃은 일본이 될 것 같다. 글 심지현·사진 오계옥
프로필 | 물리학과 90학번 · 현 deepictures 대표·<품행제로>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영어완전정복>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 <효자동 이발사> <돌려차기> CG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