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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돌아온 영화광,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2003-11-18

<킬 빌> 1편

<킬빌>의 줄거리는 무척 단순하다. 1편만 놓고 보면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의 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암살단의 일원이었던 한 여자(우마 서먼)가 마음을 조직을 떠나 결혼해서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결혼식날 암살단 단원들이 몰려와 하객을 다 죽이고, 임신중이던 이 여자의 머리에 총을 쏜다.(1편은 이 여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냥 신부라는 뜻의 ‘브라이드’로 나온다.) 그러나 이 여자, 브라이드는 기적처럼 죽지 않았다. 4년동안 코마 상태에 있다가 깨어난다. 암살단원의 명단을 작성하고서 한명씩 죽이러 간다. 그 최종 목표가 두목인 ‘빌’이다.

결혼날 죽었다 4년뒤 소생

<킬빌> 1편은 브라이드의 살생부에 적힌 5명 중 둘을 죽이는 데서 끝난다.(2편은 미국에서 내년 2월에 개봉한다.) 빌이 어떤 인물인지, 브라이드와 빌의 암살단은 어떤 구원을 쌓았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브라이드가 죽이려는 인물에 대한 설명, 그리고 결투로 이어진다. “복수는 차가울 때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같다”는 글귀를 격언처럼 인용하며 시작하더니, 냉기가 가시면 안된다는 듯 오로지 복수의 결투 장면으로 영화의 절반 가량을 채운다. 거기서 동서를 막론하고 액션영화들의 명장면들을 뒤섞어 인용하는 버라이어티 쇼가 펼쳐진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 장철의 무협영화, 이소룡, 마카로니 웨스턴이 망라되고 총, 칼, 주먹에 사슬 달린 쇠공 같은 비기까지 지리할 틈 없이 결투의 방식도 바뀐다.

이소룡, 강대위, 일본의 소니 치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매력을 거부하기 힘들다. 이들 정도로 브랜드가 굳어진 액션영화에서, 줄거리라는 건 액션을 끌어내기 위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권선징악이라는 장치가 사실 얄팍하고 작위적이라는 건, 몇 편을 보면 안다. 핑계나 구실 걷어내고 바로 결투로 달려가는 <킬빌>의 폭력은 야비하지가 않다. 권선징악을 빌미로, 악한에 대한 분노를 자극해 관객 내면의 잔인함을 유도하는 장치가 없다. 그래서 서슴없이 사람의 목, 팔, 다리를 자르고 피를 큰 대야로 쏟아부을수록 관객은 잔인함이나 분노의 정서에서 멀어진다. 이런 극단적인 묘사는 이 액션이 영화라는 재현된 세계에서의 액션임을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그러니까 명목적으로는 잔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잔인하지 않다.(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길게 하는 건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 영화의 ‘잔인함’을 문제삼은 탓에 목, 팔, 다리가 잘리는 12초의 장면이 삭제된 채 개봉되기 때문이다. 그게 잘린 영화는, 안 잘린 영화보다 더 야비하고 잔인할 것이다. 종종 검열은 텍스트를 더 외설적이고 선정적으로 만든다.)

액션 명장면 버라이어티쇼

<킬빌>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재키 브라운> 이후 6년만에 내놓은 야심작이다. 그의 영화에선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이 잘 안된다. 우발성과 비합리성까지 포괄해서 서술되는 인물들의 동인은 관습적이지가 않다. <킬빌>은 그의 영화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양식적이고,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지만, 여기에서도 타란티노의 냄새가 난다. 코마 상태에 빠진 브라이드를 겁탈하려다가 깨어난 브라이드에게 입술을 깨물려 죽는 남자 같은 설정이나, 브라이드와의 결투에서 머리 반쪽이 베이져 쓰러지는 오렌 이시(루시 류)의 “그 칼 하토리 한조(일본 검 제조의 명인) 것이 맞구나”라는 마지막 말 같은 건 확실히 타란티노 표이다. 할 말을 확실히 알고, 그 말을 다 한 사람이 부리는 여유 같은 것이랄까. 21일 개봉. 글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