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은 한국 만화·애니메이션계에 새 바람이 분 해였다. 이 해에만 국제행사가 5개나 열렸다. “만화·애니메이션이 21세기 문화콘텐츠 시대의 핵심이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그해 가을 동아LG페스티벌이 처음으로 개최됐다. 김병갑(30) 감독은 그 대회에서 자신의 첫 작품으로 대상과 캐릭터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다. 2D로 만든 13분42초짜리 작품 <꿈꾸는 종이인형의 살인>이라는 작품이었다. 소녀를 사랑하게 된 한 로봇의 이야기를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운이 좋았죠.”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 대회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 국내 메이저 제작사 중 하나인 애이콤의 넬슨 신 회장이었다. 김 감독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신 회장은 그를 바로 스카우트했다. 자신의 첫 창작품이자 야심작인 <왕후 심청>의 캐릭터디자인과 콘티, 설정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애이콤 기획실에서 3년 넘게 근무하며 그는 극장용 대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체득했다. 신참 독립감독으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운이 좋았죠.”
회사 일을 하면서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듯 짬을 내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1998)는 그해 2회 동아LG대회에서 그에게 캐릭터상을 안겨주었다. 이듬해 내놓은 <Like sex, the Fish>(1999) 역시 그해 대한민국 영상미술대전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안았다.
공주대 만화애니메이션과 2기로 입학했지만 도중에 학교를 나온 그였다. 뭔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씨네21>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 CF회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거듭하며 만든 <꿈꾸는 종이인형의 살인>은 그의 삶에서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된 셈이다. “장편애니메이션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그 꿈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네미의 숲>
2000년 <바리공주> 기획에 잠시 참여했다가 아쉽게도 꿈을 접고 이제 다시 <아치와 씨팍>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아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중간에 투자문제로 ‘다시 낙마하는 게 아닌가’ 하며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이제 다시 궤도에 올랐다고 말한다.
“단편과 장편은 호흡이 다르죠. 장편과 단편을 두루 만들어봤다는 점이 제게는 가장 큰 밑천인 것 같아요.” 그러는 와중에도 자기 작품에 대한 의욕은 휴화산처럼 조용히 숨쉬고 있다. 지금은 잠시 미뤄놨지만 곧 다시 손을 보겠다는 <네미의 숲>이 그것이다. 낮에는 인간이 살고 밤에는 신들이 산다는 유럽 신화의 장소를 차용했다. 사이보그를 만드는 노인들이 숲속에 사는 인간과 벌이는 이야기는 끝모를 미로를 연상시킨다. 잠깐 선보인 스토리보드상의 이미지는 형광물질을 품고 있는 어두운 밤하늘의 느낌을 주었다.
“분위기는 엽기적으로 보이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아마 OVA로 나오게 될 겁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현장에서 땀흘리는 사람들에 의해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무리 비바람이 거세도 눈보라가 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화려한 레토릭보다 땀에 젖은 운동화가 더 필요한 때 아닌가.정형모/ <중앙일보>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