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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릴레이] <내가 여자가 된 날> - 김소영 교수
2003-11-11

이들의 영화는 늘 새 문을 연다, 그중 이 문이 가장 맘에 든다

이란의 ‘마흐말바프 필름 하우스’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삶과 영화의 전면적 접촉 속에서 만들어진다. 마흐말바프가의 가족들은 집에 영화학교와 영화사를 차려, 영화를 만들다가 돈이 모자라면 그 집을 팔고, 영화의 수입금이 들어오면 다시 집을 사고…, 그래서 아예 잃어버린 집 대신 영화사 이름을 필름 하우스로 명명하고 “영화적 영원”을 살기로 결정한다. 가족들의 막내이자 꼬마 감독인 8살, 하나도 시장과 검열의 압력에 굴복하는 대신 집을 파는 것에 기꺼이 동의했다고 한다.

씨네큐브 극장에서 바로 이 마흐말바프가의 세 편의 영화를 씨네 릴레이라는 이름으로 상영한다. 마르지예 매슈키니의 〈내가 여자가 된 날〉,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칠판〉,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사랑의 시간〉이 차례로 보여진다. 이 놀라운 영화 가족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버지 마흐말바프는 17살에 이슬람 지하 조직에 가담해, 4년 반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후 그는 이란의 문제를 문화적 빈곤으로 보고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린다. 그리고 영화학교를 세워 자신의 세 아이들과 그들의 이모인 마르지예 매슈키니를 가르친다. 아이들의 엄마와 사별 후 매슈키니는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아내가 된다.

상영 중인 〈내가 여자가 된 날〉은 마르지예 매슈키니의 영화학교 졸업 논문 영화이자 첫 작품이다. 관객들을 소리 소문 없이 흡입해 몰입하게 만드는 다른 이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청각적, 시각적 경탄의 대상이다. 다른 이란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여자가 된 날〉은 제목처럼 매우 명료하게 여성주의적 입장을 전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오! 잠깐, 이 영화는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3개의 에피소드들은 서로 동떨어진 듯 보이다가, 마지막에야 무심한, 그러나 필연적인 결절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9살 ‘여자가 된 날’을 맞은 소녀와, 자전거 경주에 참여한 여자와, 재산을 몽땅 털어 바닷가에 환상적인 임시 거처를 마련한 나이든 여자는, 모두 기존 질서가 요구하는 여자가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들의 날을 맞이한다.

내가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중간에 있다. 섬 이름이 키쉬라고 한다. 절벽과 흰 포말의 파도가 현란한 이 키쉬 섬에, 자신을 잡으러 오는 친척들과 남편과 오빠들의 말발굽 소리에 쫓기는 아후(사슴이라는 뜻)의 이미지가 각인되는 순간, 그것은 여성적 장엄미라는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선물한다. 압도적 자연이 아니라 여성과 자연이 서로에게 말을 걸고 위로하는 순간 같은 것. 나는 이 키쉬 섬을 질주하는 아후의 페달이 멈추지 않기를 바랐지만, 영화는 상심을 주는 현실원칙을 따라간다. 오빠들이 모는 말들이 광포한 소리를 내며 그녀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팬태스틱한 상상력과 현실의 원칙들이 이렇게 교차하면서, 영화는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사유의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부산 영화제의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공들여 소개한 것처럼 마흐말바프가의 영화들은 늘 새로운 문을 연다. 열고 또 연다. 그중 〈내가 여자가 된 날〉이 여는 문이 난 가장 마음에 든다. 김소영/영상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