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공장 노동자가 등장하는 드라마라니, 간만이다. 〈나는 달린다〉(MBC 수ㆍ목 저녁 9시55분)에서 그저 뛸 뿐인 남자 무철에게는 있는 게 없다. 아버지는 운동회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남동생은 나돌기만 한다. 달동네도 상달동네 옥상의 물탱크 같은 방이 무철의 전셋방이고, 옥상에는 태풍에 날아온 듯한 쓰레기들이, 바닥은 금방 천막과 철재를 걷은 듯 누릇누릇하게 녹슬어 있다. 무철은 작은 공장의 용접공이다. 원래 가난한 노동자가 가진 것은 몸뚱어리뿐이었다. 그 몸뚱어리로 그는 뛰기도 한다. 그는 살아 있다는 것을 가쁘게 느끼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무철의 담백함처럼 〈나는 달린다〉가 내재한 프로필도 아주 간소하다. <나는 달린다>의 주인공 역을 맡은 김강우는 TV에서 처음 보는 얼굴이고 작가 이경희 역시 프로필에 드라마 한편도 없는 신인이다. 연출은 <네 멋대로 해라>의 박성수 PD. 신드롬이랄 정도의 반응을 일으킨 PD의 후속작으로는 의외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가난’하게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연출자의 의도’다. 그 자신만만함도 믿을 만할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나는 달린다>는 100m 달리기 선수가 “뛰는 건 똑같은데 뭐” 하고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무모해 보인다.
스토리는 굵직한 것이 없다. 그건 통상적인 관례를 벗어나는 1부의 좌충우돌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1부라면 처음으로 등장한 인물이 자신의 역을 차근차근 설명해야 하는 법. 그러나 <나는 달린다>의 1부는 그저 걸어가고 달리고 먹는다. 등장인물이 관계를 맺는 우연한 만남은 드라마적 묘기 수준이다. 여자의 오빠가 입사시험 정보 준다는 조건으로 찾기 어려운 책을 찾아오라고 시키고, 헌책방에서 남녀가 우연히 만나고, 책을 찾아오니 오빠는 정말 찾아왔네 하고, 입사시험 정보랍시고 교도소를 찍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말을 듣고 카메라를 들고 교도소를 가고 거기서 남녀는 다시 우연히 만난다. 꼭 필요한 장면을 어설프게 꾸미기도 한다. 주요 등장인물이 한꺼번에 만나는 장면을 마라톤 대회로 설정했는데, 상황은 웃기지 않는 코미디가 된다. 거기다 1등인 무철이 탄 상품은 휴대폰이란다. 이런 악수를 두었는데 전체적인 흐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사건이 없는 것은 차라리 나은지도 모른다. 목적없고 이유없는 신들만으로 모여 있다면 말이다. 그 이후로 진행된 사건은 일일드라마의 사건 같다. 말하자면 사건은 있지만 그 속에 진정한 사건이 없다. 여주인공 희야의 어머니가 운전면허증을 땄다, 그래서? 교수인 아버지가 대학원생의 여자의 꾐에 넘어간다. 지식인에 대한 풍자? 단지 교수는 순진했을 뿐이다. 무철의 동생 상식은 출소한 뒤 사기를 치고 다닌다. 주인공의 도덕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이 부분은 거의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시원하고 경쾌한 톤이다. 4부에서는 동화 읽는 컷 위로 ‘재연장면’을 삽입하는 ‘실험’까지 했지만 스토리에 충격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조율은 삐걱댄다. 배역의 배경은 밑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배우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공장에 다니는 무철 동료들은 곱상한 얼굴에 강남 도련님 패션이다. 동생 상식이 사기치는 장면에서는 앞뒤 장면에 있던 콧수염을 미끈하게 밀고 나온다.
거기다 몸뚱어리가 재산인 남자에게 걸었던 기대는 이런 대화가 오가면서 슬그머니 사라진다. 여자와 남자가 연극을 보러 갔다가 나와서 서로의 나이를 물어본다. 여자가 “저 98학번이에요.” “저는 학번으로 나이 아는 사람 아니에요. 공고 나와서 공장에 다니고 있는걸요.” “말도 안 돼요.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구요?” 여자는 “못 믿겠다”며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래서 둘은 공장으로 가고 남자는 용접을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자격지심을 느끼는 이른바 중요한 장면이다. 4부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이런 말도 한다. “그냥 공돌이 아니잖아요.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책 많이 읽었을걸요.” 책 안 읽는 그냥 공돌이 더 살맛 안 난다.
<네 멋대로 해라>는 육박하는 현재를 뛰는 것으로, 고조된 몸뚱어리로 부딪쳤다. 정작 뛴다고 하는, 저돌성으로, 자신만만함으로 달리겠다고 하는 <나는 달린다>는 비틀거린다. 4부가 끝났으니 마라톤이라면 초반이다. 앞으로 더욱 더 풍경은 비워지고 까마득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점을 넘어 새로운 호흡이 나올지도 모른다. <네 멋대로 해라>가 성공했을 때 공은 작가에게 배우에게 그리고 연출자에게 나누어졌다. <나는 달린다>는 한 사람의 자신만만함이 밀고온 것이다. 좋은 드라마가 되든 그렇지 못한 드라마가 되든 모든 책임은 그 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후반 좋은 경주를 보고 싶다. 구둘래/ 자유기고가 kudl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