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6일 일요일 맑은 오후에 찾아간 서울 수유리 신일고등학교. 남학생들만 다니는 이 학교의 후문 입구를 웬 여고생들이 도란도란 까르르대며 빠져나온다. 날은 가을인데 얇은 하복 교복을 입은 학생들. 그 틈에 배우 하지원이 두 친구와 수다를 떨며 걸어내려가고 있다. 하지원과 두 친구들 주변에서 ‘하교’ 중이던 학생들끼리 동선이 엉키자 감독의 컷 사인이 들려온다.
김재원과 하지원이 주연하는 영화 <내 사랑 싸가지>가 이날 강하영(하지원)과 안형준(김재원)의 재회장면을 취재진들에게 공개했다. 외제차에 흠집을 내고 내뺀 고3 여고생 강하영을 붙잡으러 학교까지 찾아온 돈 많은 대학생 안형준. 그는 교문 앞에 “강하영 일루 튀어와라!!!”라고 쓴 종이들과 강하영의 학생증을 확대복사해 잔뜩 붙여놓고 구석에서 대기 중이다. 이를 알 리 없는 하영은 웅성대는 학생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벽에 붙은 자기 이름과 학생증 복사본을 보며 기겁하고, 바로 이 때 형준이 나타나 하영을 나꿔채간다.
<내 사랑 싸가지> 촬영팀은 이날 총 40컷을 찍어간다는 목표로 오전부터 촬영 중이었다. 신동엽 감독은 “별로 중요한 신들이 아니기 때문에” 웬만해선 테이크를 세 번 이상 넘기지 않았고, 촬영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에는 “시간이 2시간은 남아요”라며 예상보다 빨리 끝나는 일정에 뿌듯해했다. 비단 ‘빨리 찍기’로 현장을 늘어뜨리지 않는 감독 스타일 덕분이 아니더라도 이곳 현장은 유난히 활기있다. 사인을 받겠다고 배우들 뒤를 철없이 졸졸 쫓아다니는 초등학생 팬들, 엑스트라로 동원된 생기있는 여학생들, 그리고 수능을 열흘 정도 앞두고 자율학습 도중에 슬리퍼 차림으로 교실을 빠져나온 고3 남학생들이 주위를 둘러쌌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11월 초 모든 촬영을 마치는 <내 사랑 싸가지>는 내년 2월 중순경 개봉할 예정이다. 배급은 시네마서비스.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글 박혜명 na_mee@hani.co.kr
♣ 자신을 잡아가려는 벽보들을 보고 기겁하는 강하영. 실제 나이가 김재원보다 많은 하지원은 “사복을 입으면 재원씨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 같아서 교복 입는 장면이 좋다”며 웃었다.
♣ 스물일곱의 나이로 데뷔하는 신인감독 신동엽(맨 왼쪽)은 자주 웃고 즐거워하는 밝은 성격의 사람이다. 그와 함께 현장을 컨트롤하는 사람이 황철현 촬영감독(왼쪽에서 두 번째).
♣ 엑스트라로 동원된 여학생들. 이들 중 한 여학생이 촬영 막간에 친구에게 쪼르르 달려가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김재원이 이렇게 지나가다가 내 앞에서 이렇게 스쳤어!” 이 학생들은 이날 쌀쌀한 기운 속에 온종일 하복 차림으로 촬영에 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