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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와 균형, 거침없고 자연스러운,데이비드 보위 신보
2003-11-01

지기 스타더스의 새 앨범이 나왔다. 30주년 기념 음반들을 줄줄이 뽑아내더니 힘을 받았는지 지난해의 <Heathen> 이후 또다시 신곡으로 채워진 새 앨범 <Reality>를 발매했다. 무려 25번째 앨범. 이 어인 정력인고! 영원한 변신을 꿈꾸는 이 50대 중반의 영국 양성애자는 여전히 젊은 모습이다. 모습뿐 아니라 음악도 그렇다. 아직도 변화의 도정에 있는 그.

이 아저씨의 변신은 ‘무죄’가 아니라 ‘컨셉’이다. 예를 들어 파리의 프레타 포르테 패션 쇼는 봄 가을로 바뀐 트렌드를 보여주어야 한다. 단 한 계절도 쉴 수 없다. 쉬는 순간 트렌드의 세계는 죽는다. 무거운 사람들은 그 변화를 가볍게 보고 가벼운 사람들은 그 변화에 매몰된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비난이나 찬사의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 그냥 어떤 시스템의 ‘속성’이다. 사람들은, <보그>나 <마리 클레르>를 읽는 젊은 주부들을 포함하여, 명백히 그 시스템 속에 있다. 데이비드 보위는 바로 그 속성을 컨셉으로 택하고 있다. 그것을 택함으로써 그는 그 속성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속성을 ‘보여준다’. 트렌드 자체이면서 그것을 반사하는 이 이중성, 양면성이, 가장 타협적이고 팝적이며 어떤 의미로는 천박한 그를 가장 지적인 팝 뮤지션으로 매번 끌어올리는 단서일지도 모른다.

그는 ‘모호함’에서 출발했다. 1960년대를 ‘하드하게’ 보낸 그는 1960년대의 순진함이 가지는 허구를 그 모호함으로 벗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미 히피들의 긴 머리에서 그 단서는 있었지만, 그는 와일드한 긴 머리의 남자가 거꾸로 과시하는 ‘남성성’을, 세련되게 삐쭉삐쭉 자른 자학적 스타일로 지운 것이다. 모호함은, 그에게는, 섹시함의 단서이기도 하다. 마스카라를 바르고 이발소가 아니라 미장원에 다녀온 것이 명백한 헤어 스타일을 한 남자인 데이비드 보위는 남자들에게도, 여자들에게도 섹시하다. 그리고 그 섹시함이 바로 그의 또 다른 컨셉이다. 남자답다거나, 여자답다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야 섹시한 법인데 그는 모호함을 가지고 섹시함을 끌어낸다. 불확실한 시대, 1970년대는, 때가 때인지라 그의 모호함에서 풍기는 불안의 느낌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1970년대의 가장 대표적인 우상의 하나가 된다.

그의 계속되는 변화 밑에도 바로 이런 모호함이 있다.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 그는 다른 옷을 입어버린다. 그 행위의 반복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에게 미래는 계속적으로 새롭다. 그런데 이번 <Reality>의 첫곡인 <New Killer Star>를 듣는 순간, 그의 이번 변화의 방향이 사뭇 특이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그가 이번 앨범에서 중심에 두고 있는 소리느낌은 브라이언 이노와 함께 활동하기 이전 자신의 옛날 사운드이다. 그가 복고를? 물론 보위와 함께 프로듀스를 맡은 토니 비스콘티의 교묘하고도 섬세한 일렉트로니카적 요소가 당대적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바탕 사운드는 글램 록이 한참이던 때의 그것이다. 이게 만물의 속성일까. 당장 보면 직선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원을 그리는 것 말이다.

그의 시선 역시 ‘돌아봄’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절대로 늙지 않겠다는 제목, <Never Get Old>의 내용은 그와는 반대로 늙어가고 있는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신경 좀 써야겠어. 가서 방 잡는 게 낫겠어. 나를 좀 돌봐야겠어. 다시 또다시 나는 이 점을 생각하고 나의 개인적인 역사를 생각해….” 이제는 그냥 말하는 대로 가사가 되기라도 하는 듯, 그는 편안한 톤으로, 그러나 조금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읊조린다. 이렇게 돌아보는 시선을 명확히 해놓고 난 다음의 노래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내, <The Loneliest Guy>이다. 어두운 밤중에 외로이 켜져 있는 거실의 조명 밑, 소파에 앉아 홀로 기타를 들어 곡을 지었을 법한 포크풍의 곡이다. 곡의 분위기는 초기 히트곡 <Space Oddity>와 많이 닮아 있지만 그때처럼 확장된 의식의 세계를 유영하며 자아의 확장을 진지하게 음미하는 듯한 자유로움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다음 노래는 물을 찾는다는 <Looking For Water>이다. 목마름. “아닌 것은 아니야”(Never Means Never)라며, 쓸쓸한 심경으로 물을 찾는 보위를 만나는 일도, 새롭다고 보면 몹시 새로운 일이다.

그런데 어쨌든 그는 이번 앨범에서 참 거침없고 자연스럽다. 노래들이 다 좋다. 멜로디는 여전히 신선하고 사운드는 여전히 세심하게 팝적이다. 있는 그대로이다. 욕망이 있으면 그 욕망을, 허기가 있으면 그 허기를 드러낸다. 그런데 이런 돌아봄을, 보위는 또다시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어떤 전략 속에서 말이다. 그 전략 속의 자기 자신의 허기짐을 스스로도 지쳐하면서 말이다. 참 보위다운 앨범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혹시 금욕주의적인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번 앨범을 들으며 하게 된다. 처음부터, 그의 아름다움은 절제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양을 맞춘다는 것은 절제와 균형이 없이는 안 되는 일인데, 늘 그의 노래가 그런 겸허함을 품고 있어왔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잘 늙는다. 이미 노년의 침묵을 젊어서부터 연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잘생긴 아저씨는 머리도 안 빠지나보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