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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묘수풀이 대담
2003-11-01

‘경제위에 문화’ 유네스코 협약 힘 실어야

지난 10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서 “스크린쿼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말한 뒤, 스크린쿼터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1998년 이후로 수차례 스크린쿼터 유지론자와 축소·폐지론자의 주장이 대립해오면서 스크린쿼터와 국내 경제·산업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는 많이 다뤄져왔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돼온 스크린쿼터의 대외적 측면, 즉 국제 통상 협정에서 스크린쿼터가 어떤 위상에 있으며 미국은 왜 스크린쿼터를 줄기차게 문제삼는지 등과 관련해 좌담을 마련했다. 새로운 논제를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스크린쿼터 지지론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불렀다.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 노무현 대선 후보 문화특보를 지낸 이기택 문화포럼 대표, 국제문제 전문인 김형진 변호사를 지난 27일 만났다. 편집자

사회=스크린쿼터 문제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지만, 나라마다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한다는 문화적 종다양성의 개념으로 보면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스크린쿼터를 얘기할 때 이 점이 상대적으로 등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이기택=문화적 종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영국 등 영미권과, 이걸 지키려는 유럽·남미 국가들 사이에 큰 전선이 있다. 지금 추세는 후자가 앞서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유네스코 문화협약이다. 200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지금 문안을 만들고 있는 이 협약은 각국의 고유한 문화를 자본의 논리로 획일화시키려는 미국의 문화 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걸 국제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양기환=문화 상품, 문화 서비스라는 범주가 유엔이 정한 상품 코드에 따르면 1200개가 넘는다. 이걸 상품의 관점에 다루면 안 된다. 문화 상품을 일반 상품과 똑같이 시장 논리에 맡기고, 어떤 보호나 규제도 하지 않는다면 <매트릭스 3>을 개봉할 때 전 세계가 똑같이 이 영화만 보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문화협약은 주권국가가 스크린쿼터를 하든, 방송쿼터를 시행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통상협정을 가지고서 여기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국제역학 관계상 개별 국가간의 교섭에 맡기면 문화상품도 일반 상품처럼 취급하려는 미국의 힘 앞에 버티기가 힘들다. 문화협약이 발효되면 이걸 가지고 버틸 수 있게 된다. 스크린쿼터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문화협약을 들이대면 되는 거다. 지리한 스크린쿼터 논쟁도 끝낼 수가 있다.

사회=문화협약이 어떻게 진행돼 왔고, 향후 전망은 어떤가.

이=2001년 유네스코 총회는 186개 회원국 동의로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서’를 채택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4월 58개국이 참여하는 유네스코 이사회에서 올해 총회의 안건으로 문화협약 추진을 상정시켰다. 그리고 9월 말~10월 중순에 열린 총회에서 60대5 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문화협약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반대한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권 5개국뿐이다. 유네스코는 앞으로 2년 동안 문화협약 문안을 작성해 2005년 총회에 올리게 된다.

김형진=문화협약이 발효되면 그동안 원론으로만 문화상품의 예외성을 주장해온 법적 무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다. 유네스코가 문안 작성에 참고하는 것이 세계문화부장관회의(INCP)이 마련한 문화협약 초안이다. 이 초안은 문화 협약 내용이 국가간의 다른 협약과 상충될 때 어떤 것이 우선하는지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10월 12~15일에 열린 ‘세계문화 NGO 총회(INCP)’에서 이 문제를 분명히 할 것을, 다시 말해 다른 협약과 상충될 때 문화협약이 우선함을 명시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양=INCP와 INCD는 오랫동안 동맹관계에 있어왔기 때문에 INCD가 강력히 요구하면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문화협약이 다른 조약이나 협약에 우선한다는 조항이 명시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영국은 이런 기류를 알고서 문화상품도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에 대한 일반 협정(GATS)에서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2월, INCD보다 전문가들이 모인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는 GATS가 완성되기 전에 문화협약을 발효시키자는 결의를 했다.

사회=이런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대해 한국 정부의 입장이 명확히 발표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반대로 한국의 민간 문화단체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위상도 높아 보인다.

양=올해 유네스코 총회에서 유네스코 한국이사회 이사장인 윤덕홍 부총리가 기조연설을 했다. 언론에는 한국이 문화협약을 찬성한 것으로 보도됐지만, 연설문 내용을 받아본 결과 찬성도 반대도 아닌 애매한 입장에 가까웠다. 재경부나 외교부는 문화협약에 반대할 거다. 지난 6년간의 스크린쿼터 지키기 운동 과정에서 뼛속 깊이 느낀 게 미국과 한국의 내부 커넥션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INCP가 만들어진 98년부터 최근까지 한국 문화부는 이런 단체가 있는지, 뭘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INCP에 한국 문화부 장관이 참가한다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다. 실제로 INCP에 한국이 가입했다. 물론 이 과정도 몹시 힘들었다. 올해 행사에 문화부가 나갔는데 장관 아닌 국장급이 대신했다. 그러나 민간 차원에서 한국 문화단체의 활동은 각국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한국의 스크린쿼터 투쟁은 외국의 문화단체에게 모범사례이다. 그리스에선 와서 강연해달라고 했다. 이번 INCD 총회에서 한국의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대표자격으로 스크린쿼터에 대해 연설했을 때도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어가 영어, 불어, 스페인어와 함께 공식언어였다. 또 현재 8개국 대표로 구성된 INCD 운영위원을 한국이 맡아달라는 제의까지 받았다.

김=바로 그 점 때문에 미국이 자꾸만 스크린쿼터를 문제삼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국 영화시장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작은 나라 하나 마음대로 못 하니까 국제 사회에서 체면이 안 선다고 생각할 거다. 실제로 스크린쿼터에 시비거는 미국의 논리는 자기모순이다. 왜 미국은 통신을 개방하지 않는가. 그렇게 표준화가 좋다면, 미국 안에서부터 표준화해야 할 텐데 왜 주마다 상법이 다르고 교통법규가 다른가.

사회=아·태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스크린쿼터를 조속히 해결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다시 스크린쿼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양=나는 이런 상황을 음모라고 생각한다. 지난 9월 노 대통령 방미 때도 한·미 재계 회의에서 스크린쿼터 관련 발언을 해서 한차례 논란이 됐다. 그때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 이는 미국영화제작자협회(MPAA) 부회장 보니 리처드슨이었다. 한·미 재계회의는 양쪽 파트너가 함께 하는 자리였다. 한국쪽 영화업자가 아무도 가지 않은 그 자리에 와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나중에 전경련쪽에 따져물으니, 미국쪽에서 갑작스럽게 끼워넣었다고 말하더라. 그게 납득이 안 가는 거다. 한국 재계 관료들이 어쨌든 양해했다는 말 아닌가. 이번 아태경제협력체 회의 때도 휴 스티븐 타임워너 아태부회장이 노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져서 문제의 발언이 나온 거다. 그 사람이 거기 참석하게 된 것을 두고서도 한국 재계 관료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이=지금 청와대에 문화쪽을 담당하는 비서진이 없다. 연락관 한명 있을 뿐이다. 이게 큰 문제다.

김=한국쪽의 스크린쿼터가 국제법적으로 부당하다면 미국은 벌써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을 거다. 다른 상품의 경우 이미 여러차례 하지 않았는가. 못 하는 건 법적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2차대전 후에 미국이 중심이 돼 만든 ‘관세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서도 문화영역은 예외로 했다. 영화 산업이 자신있으니까 지금 그걸 스스로 뒤엎으려고 하고 있는 거다. 한국도 경제 차원에서도 문화를 소중히 할 때라고 본다. 70년대 중공업을 육성시켰듯, 지금은 문화산업을 육성시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실제로 영화에서 그런 발전이 일어나고 있고. 지금 우리가 이렇다할 산업이 있나. 사회·정리 임범 기자 isman@hani.co.kr,사진 강창광 기자

용어풀이

세계문화NGO총회(INCD/ International Network for Cultural Diversity)=방송, 출판, 음반, 순수예술, 영화 등을 망라한 70여개국 500여 문화단체와 예술가들로 구성된 비정부기구(NGO)로 2000년에 결성됐다. 문화분야 비정부기구들의 가장 큰 국제 네트워크이다.

세계문화부장관회의(INCP/ International Network on Cultural Policy)=98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네스코의 ‘발전을 위한 정부간 문화정책회의’ 직후 설립됐다. 문화와 관련된 국제적인 안건에 대해 각국 장관들의 관점을 나누고 논의하는 정부간 비공식기구이다. 현재 53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다.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98년 봄, 캐나다 퀘백주의 문화단체들에 의해 설립돼 99년부터 범위가 커졌다. 현재는 출판, 영화, 텔레비전, 음악, 공연 등 각 문화 분야 42개국 300여개 이상의 문화전문가단체들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