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터놓고 들어가보자. 당신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 혹은 좋아하는 음악의 요소는? 분석적으로 듣는 것은 평론가들에게나 맡기겠다고, 좋아하는 데 꼭 이유가 있냐고 대뜸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리듬, 가락, 화성, 음색 운운하며 음악의 구성요소를 늘어놓으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한마디로 멜로디가 귀에 꽂히니까, 온몸에 짜릿하게 울리는 비트가 근사하니까, 하는 정도의 취향에 대한 이유는 누구나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린킨 파크(Linkin Park)는 반할 이유의 폭이 넓은 밴드라 할 만하다. 이를테면 그들의 히트곡 <Crawling>이나 <In the End> 같은 곡에서 보듯, 선율이면 선율, 리듬이면 리듬, 록 사운드면 록 사운드 다양한 들을거리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In the End>에서 전주와 중반부의 키보드가 뒷받침하는 감성적인 선율, 전주부터 가볍게 깔리는 디제잉 비트와 이어지는 랩의 생기있는 리듬, “I try so hard/ And got so far/ But in the end/ It doesn’t even matter” 하는 클라이맥스에서 거칠게 터지는 기타와 드럼의 사운드가 매끈하게 조화를 이룬 음악. 헤비메탈과 힙합의 만남에 일렉트로니카의 매력을 슬쩍 버무린 린킨 파크의 음악은, 굳이 각 장르의 순도를 따지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법하다. 이들 린킨 파크가 오는 10월29일 수요일 저녁 8시,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2000년 <Hybrid Theory>로 데뷔한 린킨 파크는 미국 캘리포니아 LA 출신의 6인조 밴드. 보컬에 체스터 베닝턴, 기타에 브래드 델슨, 베이스에 대런 “피닉스” 패럴, 드럼에 롭 버든 등 록밴드의 기본 라인업에 MC 겸 보컬 마이크 시노다, 턴테이블 및 샘플링을 맡는 DJ 조셉 한이 가세한 구성이다. 이미 국내 여러 매체에서 화제가 됐다시피 조셉 한은 미술을 전공한 한국계 미국인 3세이며, 마이크 시노다는 일본계 미국인. 애초 밴드의 이름이었다가 1집의 제목이 됐다는 ‘Hybrid Theory’, 곧 ‘혼성(또는 잡종) 이론’은 이들의 음악을 집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헤비메탈, 특히 디스토션 같은 효과로 찌그러뜨린 스래시 메탈의 육중한 기타 리프와 역동적인 드러밍, 서정적인 선율과 공격적인 샤우팅을 시원스럽게 소화하는 베닝턴의 보컬은 록에 기댄 요소. 라임을 타는 시노다의 래핑, 곡의 전주나 간주는 물론 곳곳에 배음으로 깔리며 사운드의 결을 풍성하게 해주는 샘플링과 스크래치 위주의 디제잉 사운드는 힙합에서 끌어온 요소라 할 수 있다.
사실 이처럼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시도는 90년대 초반 이후 팝신에서 두드러지는 한축을 형성해왔다. 랩 메탈, 랩 록, 얼터너티브 메탈, 뉴 메탈, 심지어 장르 구분으로서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라는 하드코어 랩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들 음악의 기본은 백인의 전유물에 가까웠던 헤비메탈과 흑인 음악의 유산인 힙합의 혼성 교배.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음악의 색채는 조금씩 다르나, 멀리는 비스티 보이즈부터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 키드 록, 림프 비즈킷 등을 거치는 동안 랩 메탈은 브릿팝과 더불어 얼터너티브 이후 팝 계보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린킨 파크는 랩 메탈의 영향권에서 가장 최근에 배출된 스타. Hybrid Theory >는 세계적으로 14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거의 2년 동안 꾸준히 빌보드 차트를 누빌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성공을 거뒀다.
이미 유행이 된 장르인 만큼, 린킨 파크의 음악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단 리듬이나 래핑에서 펑키(funky)한 힙합 냄새가 더 강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나 림프 비즈킷 등 앞선 밴드들에 비해 감각적인 멜로디가 돋보인다는 점이 색다르다고 할까. 그래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거칠게 몰아치는 사운드와 대구를 이루는 듣기 좋은 선율의 매력이 과격한(?) 랩 메탈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청자들에게까지 흡인력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다. 힙합 계열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2002년의 리믹스 음반 <Reanimation>이나 지난 3월에 발매된 두 번째 음반 <Meteora>에서는 힙합과 일렉트로니카의 변주를 강화한 음악을 적극 시도하기도. 2집에는 평소 묻혀 있기 쉬운 조셉 한의 디제잉을 강조한 <Session>이나 힙합 색이 짙은 <Nobody’s Listening>, 현악과 피아노 편곡 및 일렉트로니카 스타일을 뒤섞은 <Breaking The Habit> 등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2집에서도 타이틀곡 <Somewhere I Belong>을 비롯한 다수의 곡을 지배하는 것은 역시 선율이 강한 랩 메탈이라는 특유의 스타일. 때로는 감상적인 선율을 타거나 맹렬하게 내지르는 베닝턴의 목소리로, 때로는 리듬감 있는 시노다의 중얼거림으로, 린킨 파크는 “해답이 그리 분명치 않다는 걸 알아버린” 세상에서 종종 “차라리 사라질 수 있는 길을 찾길”(<One Step Closer>) 바라는 동시대 청춘들의 좌절과 분노를 드러낸다. 소통의 상실, 쉽게 섞여들 수 없는 사회에 대한 불만 등 불특정 ‘You’로 지칭되는 다수 대상과의 관계와 혼란한 젊은 날의 사색으로 감성을 두드리는 음악. 도어즈 시절부터 명소로 이름난 클럽 위스키 어 고고의 무대에서 시작해 2001년에만 300회 이상의 라이브를 펼쳤을 만큼 대중을 사로잡은 린킨 파크의 저력을, 이번 공연에서 확인해볼 수 있을 듯하다. (예약: 티켓파크 www.ticketpark.com 1544-1555, 공연 및 공연장 문의: www.allAccess.co.kr 02-3141-3488)황혜림 blau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