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 <스캔들…>의 화법에 대해 숙고하다
자기 얘기를 남 말 하듯 ‘내 친구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에둘러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예컨대 “내 여고 동창 중에서 남편 몰래 애인을 사귀는 친구가 있는데…”로 시작하는 말의 상당수는 나중에 본인의 경험임이 밝혀진다. 이런 식의 화법은 공격당하지 않고 내밀한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바람에서 나온다. 개인의 경험을 존중해서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공격하지 않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굳이 이런 어정쩡한 화법이 필요없다. 하지만 선의의 고백을 그 동기는 무시하고 파편적인 사실을 꼬투리 삼아 사회 규범의 등 뒤에 숨어서 독화살을 날려대는 문화라면? 송두율 교수의 경우처럼 삶의 전체적인 서사는 생략하고 죽은 이념의 탈을 쓰고 몇몇 맛있는 사실만 하이에나처럼 물고늘어지면서 공격해대는 파시즘이 일상화된 곳이라면? “내 친구는”으로 시작하는 화법은 비열함이 아니라 지혜로움으로 칭찬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화법에서 ‘내 친구’는 더럽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상의 파시즘을 다만 피하기 위한 우회로일 뿐이므로 이 문장의 의의는 ‘그래도 자신이 절실히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좀더 잘나고 용기있는 인간이라면 일상의 파시즘이란 거대한 똥덩어리를 치워버리기 위해 고단한 삽질을 하겠지만, 그게 어디 보통 사람들의 근력으로 가능한 일인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말을 건네는 방식도 ‘내 친구는…’의 화법을 닮았다. 성에 개입하는 강고한 제도적 이데올로기를 ‘징벌의 결말’로 피해가면서, 우아한 복식으로 겹겹이 은폐된 조선시대의 성을 드러내는 것. 나는 이 영화의 전략을 그렇게 봤다. 말하자면 내러티브를 통해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미학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같이 성이 억압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성의 억압은 사실상 개인에 대한 권력의 억압이니 인간들아 옷고름을 풀어헤쳐라”고 직언하기에는 리얼리티 견적이 안 나온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고민없이 옷고름 푼 인간들의 불행을 보여줌으로써 논란을 피하고, 다른 곳에서 승부를 걸려고 한다. 미술비로 20억원을 들여서 조선시대의 복식을 우아하게 복원한 것은 단지 예쁜 화면 만들려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첩첩이 호사스런 복식에 둘러싸인 알몸을 들이미는 것은 복식의 위선과 알몸의 진실을 충돌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영화의 대부분을 할애한 조원의 숙부인 공략이 결국은 알몸으로 열녀의 복식을 벗기는 과정인 점을 상기해보라.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것은 ‘바람 피우면 다친다’는 제도의 전언이 아니라 인간은 결국 알몸의 개인으로 만나야 한다는 은밀한 선동이 아니었을까. 이런 혐의는 곳곳에서 노출된다.
조원은 관리인 숙부인의 시동생이 휘두른 칼에 죽는다. 얼핏 바람 피웠기 때문에 제도적 응징을 당해서 죽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자살에 가깝다. 칼에 찔린 채 숙부인을 찾아가면서 그는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쾌락에 빠져 있는지 사랑을 하고 있는지 나를 믿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말을 남긴다. 의원을 찾아갔으면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르는, 이 진정한 쾌락주의자는 생애 처음으로 숙부인에게 고해하고 사랑을 시작하고픈 절실한 마음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결국 조원의 죽음은 제도적 징벌이 아니라 개인의 파멸이며, 사회적 규범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숙부인의 자살도 죽음을 무릅쓴 조원의 사랑에 대한 화답으로 읽을 수 있다.
시집가는 것처럼 몸단장하고 신부 입장하듯 또박또박 걸어서 얼어붙은 강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라(이 장면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에서 여주인공이, 할복한 남편의 피를 하얀 버선발로 밟고 화장대로 가서 천천히 화장을 한 뒤 자결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얼마나 탐미적인 남성적 판타지인가. 목숨을 건 단 한번의 고해로 열녀의 몸과 마음은 물론 목숨까지 가져가는 이 순도에 대한 집착. 그건 마약이자 예술이다. 나는 이 영화의 가장 깊은 곳에는 오럴섹스를 즐기면서 그림을 그리던 조원의 독백만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제목이 ‘스캔들’인 것은 열녀가 바람나서 스캔들이 아니라 바람둥이가 사랑에 빠져 스캔들인 것처럼 들린다. 극중의 소옥이 “몸은 조원, 마음은 권도령, 시집은 조씨 집안”으로 가서 최후의 승자가 됐듯이, 어쩌면 ‘스캔들’도 ‘몸은 쾌락, 마음은 사랑, 장가는 제도적 이데올로기’에 갔기 때문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흥행과 비평, 남성과 여성 관객 모두에게 딱히 거북하지 않은 대중적인 오케스트라로 말이다. 남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