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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기도를 올리나,<유리를 통해 어렴풋이>

Through a Glass Darkly, 1962년 감독 잉마르 베리만출연 막스 폰 시도EBS 10월25일(토) 밤 10시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1960년대에 ‘절대자의 부재’에 관한 삼부작을 만들었다.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이 영화는 국내에 <어두운 유리를 통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 있다) <겨울빛> 그리고 <침묵>(1963)으로 이어진 영화들이다. <처녀의 샘> 등 이전 영화에서도 다르지 않았지만 이 삼부작에서 신의 부재에 관한 고민과 번뇌의 과정은 확장되었다. <겨울빛>에서 어느 목사는 믿음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교를 전하지만 막상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된다. <침묵>은 죽음과 고독의 테마를 “신은 침묵하고 있다”는 간결한 대사로 응축한 바 있다.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는 삼부작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는 한 여성의 정신적 붕괴를 다루고 있다. 방 안을 돌아다니는 거미를 보면서 그것을 ‘신’이라고 믿는 이 여인을 통해 우리는, 종교와 헌신의 주제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는 휴가영화로 출발한다. 한 가족이 발트해에 있는 섬을 방문한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카린은 정신병원에서 이제 막 퇴원을 해 가족들과 섬에서 시간을 보내며 회복 속도를 당기려 한다. 그러나 예술을 위해 가족을 멀리하는 작가이며 아버지인 데이빗, 카린의 남편인 의사 마틴, 괴로운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동생 미누스는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그녀의 정신병 재발을 막아주지 못한다. 심지어 딸이 불치의 정신분열증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안 아버지는 작가의 눈으로 이를 관찰한다. 자신의 작품을 위해 딸의 일상을 일기에 적어놓기도 한다. 그뒤 카린은 병의 늪으로 급속하게 빠져든다.

영화는 한 가족의 초상을 그린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무관심하며 딸은 병 때문에 불안정하다. 나이어린 아들은 그맘때 남자들이 그렇듯 이성문제로 가슴앓이를 한다. 평온해 보이는 이들은 그러나, 어딘가 공허해 보이고 살풍경하다.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는 카린이라는 인물의 심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아버지의 노트를 발견한 뒤 그녀는 정신분열의 세계에 재차 발을 내디딘다.카린이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신음하고 새벽녘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고통받는 장면들은 섬뜩하다. 심지어 그녀는 거미를 신으로 여기고 동생과 근친상간의 관계를 맺기도 한다. 구원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는 배우들 연기가 돋보인다. 막스 폰 시도, 군나르 비에른스트란드와 해리엣 안데르손 등 감독의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호연한다. 베리만 감독은 시공간이 단일하게 구성된 영화에 무대극 형식을 빌려와 나름의 지적 실험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1960년대에 베리만 감독은 <페르소나> 등의 또 다른 삼부작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모더니즘영화의 자화상 같은 작품들이다. 이후 베리만이 <가을 소나타>(1979) 등 여성심리에 대한 집요한 관찰을 과시한 것에 비춰볼 때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는, 그 전주곡에 해당한다고 할수 있다. “사랑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대사는 영화의 하나뿐인 탈출구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