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번 만에 오케이 사인을 내리곤 하던 김지훈 감독이 자꾸만 “한번 더”를 부탁한다. 수철(조재현)이 코너에 몰려 얻어터지는 장면도, 관객이 폭소를 터뜨리는 장면도 쉽게 넘어갔는데, 두 선수가 주먹을 맞부딪치는 이 장면만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주먹이 정확하게 부딪쳐야 해요. 이렇게, 멋있게.” 체육관 여기저기엔 “허벌나게 조져버려”, “오빠 꼭! 이겨잉∼ 꼭 안아불팅깨” 같은 원색적인 구호가 붙어 있지만, 링 위에서만은 정색한 권투경기가 벌어져야 하는 것이다. 수철은 폭력조직 안에 파고들기 위해 몸을 던졌고, 여기에서 물러난다면 패배자밖에는 될 수 없으므로.
김지훈 감독은 코미디로 보이는 <목포는 항구다>를 “다른 길을 가는 두 남자가 서로를 좋아하게 되면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다.경상도 출신 김지훈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목포는 항구다>는 목포 지방 폭력조직에 잠입한 서울 형사의 이야기다. 머리는 좋지만 현장검거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수철은 엉겁결에 성기파 잠입수사를 자원하게 된다. 수철은 조직 보스 성기(차인표)가 마약밀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기는 손을 씻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성기의 심복이 되는 데 성공한 수철은 조금씩 성기에게 진실한 마음을 주기 시작한다. 목포 지역 극단 갯돌이 사투리 감수를 맡은 <목포는 항구다>는 마음은 있으나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형사를 내세워 웃음을 끌어내는 코미디영화. 그러나 ‘전라도 조폭’이라는 손쉬운 코드에 기대기보다는 남자와 남자 사이에 오가는 뜨거운 정에 더 눈길을 주는 작품이다.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보여준 건달 연기 덕분에 성기로 출연하게 된 차인표는 “<대부3>의 알 파치노 같은 남자, 낭만적이고 의리있는 남자”라고 자신의 배역을 설명했다. 단편영화 <온실>을 연출한 김지훈 감독의 데뷔작 <목포는 항구다>는 내년 초에 관객과 만나게 된다.사진 이혜정·글 김현정
♣ 남기남은 이수철 형사(조재현)가 목포 조직에서 사용하는 가명. 남기남을 응원하는 관중이 더 많지만, 줄기차게 매맞는 쪽은 남기남이다.(왼쪽사진)♣ 권투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성기(차인표). 그는 합법적인 영역으로 뛰어들기 위해 조직과 사업을 정비 중이다.(오른쪽 사진)
♣ 수철은 조직의 사업인 보물선 탐사 프로젝트 홍보를 위해 링 위에 섰다. 제대로 홍보효과를 내려면 6라운드까지는 버텨야 한다는 것이 보스의 명. 수철은 도망가고 싶지만 그 뒤엔 조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