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스캔들>을 보고, 나약한 프로페셔널리즘에 찡그리다
<오션스 일레븐>보다 허술하고 아류냄새나는 이야기 구조에도 불구하고, <오션스 일레븐>보다 오빠들의 면면이 다소 처진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안 잡>은 썩 매력적인 영화였다. 여러 층의 건물바닥을 폭파시키며 대형금고를 통째로 챙긴다는 대범한 행동이나 깜찍이 미니 3형제(자동차)가 달리는 지하철 앞으로 뛰어드는 살떨리는 액션도 좋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결말, 도둑놈들이 결국 금괴를 차지한다는 결론이었다.
물론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법질서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고자 하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나는 세상의 모든 도둑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정도의 프로페셔널한 재능과 투철한 직업윤리, 그리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가진 도둑들이라면 가끔은 성공해주는 게 말 잘 듣고 살아봤자 별볼일 없는 인생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그것이 두 시간 동안이나마 세상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영화에서라면! 만약 배신자 스티브를 다른 팀원들이 경찰에 신고해서 윌 스미스같이 날렵한 형사가 등장해 스티브를 감옥에 처넣거나, 아니면 이들이 스티브를 때려잡은 다음 그 많은 금괴를 경찰에 양도하고 자신들의 전력을 반성하면서 표창장이나 한장씩 받고 끝났다면 “아이 씨×, 역시 정의는 승리하는구나”라는 감탄 아닌 감탄을 하며 극장을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웃기게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본 뒤 비슷한 장탄식을 하면서 극장을 나왔다. “아이 씨×, 역시 진정한 사랑이 승리하는 구나.” 약간 억지를 부리자면 수천만달러를 챙긴 찰리 일행이, 자신들이 부순 건물의 경비 아저씨가 직장에서 잘리고 비참해진 모습을 보고는 깊이 깨달은 바 있어 그 돈을 모두 세계 빈민 구제에 썼다는 식으로 끝나는 버전의 <이탈리안 잡>을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탈리안 잡>과 <스캔들…>의 공통점은 프로페셔널의 세계와 그들이 벌이는 게임을 그린다는 것이다. 도둑과 바람둥이라는 사회도덕과 법질서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업계의 프로페셔널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전자는 성공한 프로의 세계를, 후자는 실패한 프로의 세계를 그린다는 점이다. 물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듯 프로페셔널도 때로는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한다. 그리고 이해심덩어리인 나 같은 관객은 프로의 실패도 자주만 하지 않는다면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알고보면 <이탈리안 잡>도 조직관리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난 프로팀이 써내려간 일종의 재활성공담 아닌가. 그런데 <스캔들…>은 아마추어들을 깔아뭉개고 비웃던 프로페셔널들이 단 한번의 실패를 통해 나약하게도 신념을 뒤집고, 동료들을 배신하며 태연하게 써내려간 ‘사상전향서’나 ‘반성문’처럼 보여서 기분이 나쁘다. <이탈리안 잡>의 천재들이 도둑질에 실패한 다음 그 재능으로 경찰에 들어가서 일한다면 얼마나 재수없었겠는가.
기왕이면 숙부인을 비롯한 세 주인공이 재기에 성공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세 사람의 파국이야 원작소설이 정해준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영화 <위험한 관계>나 <발몽>에서도 발몽과 투르벨 부인은 비참한 죽음을 맞고, 메르테유 부인은 죽음보다 못한 야반도주길에 오른다. 그러나 칼에 찔린 발몽이 조원처럼 투르벨 부인의 거처를 찾아가는 길 가운데서 죽는다거나(조원은 크지도 않은 칼에 찔렸으니 의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면 죽지 않고 사랑의 결실을 맺었을 것을!), 메르테유 부인이 발몽(조원)에게서 받았던 꽃을 보자기에 곱게 싸가지고 품고 있다가 야반도주길에 하늘에 날리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정한 사랑뿐이었어’라고 참회하거나 ‘우리 다같이 회개하자’고 관객에게 강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들의 죽음은 다만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채 룰을 깨뜨린- 사랑과 질투라는- 프로로서 유감스럽게도 재기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그 대가를 치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프로페셔널들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조원과 조씨 부인이 투철한 프로의식을 가지고 좀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조선사회의 퇴폐적인 금욕정신이 무너지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잘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일찍이 ‘낭만적 사랑’의 신화를 깨기는커녕 잘난 척만 하다가 오히려 공고하게 다지면서 프로의 세계를 떠난 조씨 집안의 두 어른이 원망스럽다.김은형/ <한겨레>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