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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릴레이] <스캔들> - 정성일 영화평론가
2003-10-14

통하였느냐? 천만의 말씀, 감독은 그럴 용기가 없었다

연애와 사랑의 차이는 간단하다. 연애는 그것이 진심인 줄 알았는데 끝나고 나서야 진심인 척 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고, 사랑은 그것이 진심인 척 했는데 끝나고 나서야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 말은 18세기 프랑스 서간체 궁중연애소설의 대가 쇼데를로 드 라클라의 충고이다. 그 라클라가 1782년에 간행한 원작소설 ‘위험한 관계’를 대담무쌍하게 프랑스 궁중 사교계에서 18세기 조선 정조시대로 옮겨 유교사회에서 벌이는 사극으로 각색한 이재용의 세 번째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연애활극이다. 그러므로 같은 말을 이재용은 훨씬 간단하게 말할 것이다.

연애는 통한 줄 알았는데 끝나고 나니 통한 척 한 것이고, 사랑은 통한 척 했는데 끝나고 나니 정말 통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이쪽을 택하건 저쪽을 택하건 둘 다 ‘姦’(간)통한 것으로 여긴다. 사서삼경과 문중제례, 천주교와 ‘熱河日記’(열하일기), 사대부와 남아선호사상의 숨막힐 듯한 조선조의 무덤 같은 질서 속에서 자유연애에 눈을 뜬 요부 조씨부인(이미숙)과 바람둥이 사촌 조카 조원(배용준), 남편이 급사한 이후 9년째 정절을 지키면서 청승과부로 지내며 열녀문을 하사 받은 정절녀 숙부인(전도연), 그리고 본의 아니게 옆집 좌의정 막내아들 순진남과 새로 들인 숫처녀 소실이 얽히고 설키면서 위험한 내기가 시작된다. 바람둥이 조원이 정절녀 숙부인을 넘어뜨려야 한다.

물론 연애 시합을 구경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적당한 음모와 음란한 대사들, 예의를 갖춘 척 하는 함정, 조선시대임이 분명한 데도 시침 뚝 떼고 흐르는 프랑스 궁정음악풍의 배경음악. 그러나 이 영화의 재미는 거기서 그냥 끝난다. 그건 이재용이 너무 시합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주인공은 그들 방식으로 모두 희생자들이다. 조씨 부인은 남존여비로 숨 죽여 지내야 하며, 조원은 사랑을 잃고 삶을 자포자기한다. 숙 부인은 사대부 가문의 정절을 위하여 과부로 지내야 한다. 그러므로 조씨 부인과 조원의 연애 내기는 사실상 조선시대의 질서에 대한 그들 방식의 저항이다. 그들의 한 마디, 그들의 행동 하나가 풍자이며 해학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숙부인을 넘어뜨리는 것이 조선조 시대의 가치를 굴복시키는 것이라는 음란한 저항이다. 그래서 숙부인을 따분한 조선조 시대의 앵무새로부터 인간의 목소리를 지닌 여자의 자리에로 인도하는 것이 이 내기의 실제적인 목표이다. 물론 처음에는 숙부인의 정절에 대한 고집만이 유일한 방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제거하자마자 진정한 방해물이 등장할 것이다. 그것은 조선조라는 그들 자신의 시대이다. 이 이야기는 그 역설을 이해해야 한다. 역설은 진정한 팜므 파탈은 숙부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시대정신의 블랙 홀이며, 시대의 자유인이었던 조원과 조씨 부인은 그들의 ‘작업’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시대의 함정에 걸려들고 만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진수는 연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통한 척’ 한 줄 알았는데 정말 ‘통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벌어질 세상과의 싸움에 있다. 그들은 숙 부인과 통한 줄 알았는데, 결국은 조선조 이데올로기와 통한 것이다. 이재용은 그것을 간과한다. 또는 정말 조선조 순정 멜로드라마에 걸려 든 채 매달리는 사람은 이재용이다.

그러니 남은 길은 방법이 없다. 연애가 사랑이 될 때 추락하는 것은 조원과 조씨 부인만이 아니라 영화마저도 오갈 데 없이 순정에 빠진 채 감상에 넘쳐나면서 서둘러 끝을 낸다. 조원은 갑자기 (‘겨울연가’의) 준상이가 되어서 눈물을 글썽이며 사랑을 감추면서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천주교도였던 숙부인은 하느님의 뜻도 잊어버리고 스스로 ‘멋있게’ 자살한다. 그리고 조씨 부인은 속절없이 이 땅을 떠난다. 이재용의 영화가 언제나 그런 것처럼, 브라질로 떠나거나(<정사>), 알래스카로 떠난 것처럼(<순애보>), 여기서는 청나라로 떠난다. 이재용은 이 땅에서 어떻게 해서든 통해 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 말의 뜻은 간단하다. <스캔들>은 ‘스캔들’을 일으킬 용기가 없는 것이다. 통하였느냐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정성일/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