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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산벌> 이준익 감독
2003-10-14

"거시기가 주인공이오"

<황산벌>은 웃기되 개그 프로그램처럼 흘러가지 않고, 후반부의 비장미와 ‘반전’이라는 주제까지 절묘한 균형을 맞춰낸다. 지난 10년 동안 충무로의 성공한 제작자(<간첩 리철진><달마야 놀자> 등)였던 이준익(44) 씨네월드 대표는 “너무 생경하다는 이유로 제의하는 족족 감독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키드캅>(93) 이후 처음으로 덜컥 감독을 맡았다. 고사만 세번, “영화 찍다가 틈만 나면 부여 부소산성 삼충사에 가서 절을 했다”는 말처럼 그의 어깨엔 엄청난 짐이 놓여 있었다.

코미디 이미지가 강한 배우들이라 어려움이 있었겠다.

솔직히 오지명·박중훈씨에 비하면 이문식씨의 연기 톤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은 워낙 이미지들이 강하니까. 근데 대단하더라. 오지명씨는 간단하다. “이 장면 코미디야, 코미디 아니야” 물어보고, 어떤 연기든 해낸다. 박중훈씨는 초반에 딱 한번 다른 의견이 있어 밤새며 토론했다. 그러고 나선 일사천리였다. 자신이 승복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배우다.

영화가 상상력을 발휘한 건 두 장군보다 ‘거시기’였다.

계백과 김유신은 이미 역사 속 인물이기 때문에 비틀 순 있지만, 새로운 창출은 불가능했다. 거시기가 영화적 보편성을 이끌어갈 인물이다. 내러티브상 주인공인 셈이지. 사실 영화 끝에 ‘이 수많은 거시기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자막을 넣으려 했는데 너무 대놓고 가르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빼버렸다.

영화 후반부의 비장미에 당혹해 하는 반응도 있을 텐데….

원래 영화 출발이 황산벌을 무대로 백제의 마지막 날을 그려보자는 거였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을 증명하는 소재로 안성맞춤이었다. 역사가 소재일 때 상업성이 없다는 핸디캡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가 사투리였다. 일종의 ‘변장’이지, 원래 우리 영화사 작품이 변장·위장술에 뛰어나지 않나.(웃음) 그래도 처음엔 솔직히 뒷부분을 어떻게 찍을지 계획이 없었다. 근데 영화 뒤에 나오는 김선아씨의 장면을 먼저 찍으며 감 잡았다. 이건 절규일 수밖에 없다, 전쟁터에 나가며 가족의 목을 베는 가장에게 아내는 절규한다. “전쟁이든, 나발이든 니가 뭔데 내 새끼 다 죽인다냐.” 그때 감을 잡으니 후반부 장면은 원래 생각보다 더 처절하게 찍어지더라. 그땐 상업이고 뭐고 계산 안 했다. 요즘 사람들에게 역사 회피주의가 있는 것 안다. 이 영화가 그걸 극복하는 데 조그만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 글 김영희 기자, 사진 이정우 기자 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