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중 영국의 와이 중대는 독일군과 일대 격전을 벌인 뒤 간신히 전장을 빠져나온다. 안개 속을 헤매던 중대원들은 독일군들이 남아 있는 참호를 탈환한 뒤 구조될 때까지 머물기로 한다. 하지만 불길한 기운이 참호를 맴돌면서, 서로를 죽이게 될 거라는 독일군 포로의 저주가 점점 현실화된다.

‘서부전선 1917년’으로 시작하는 <데스워치>는 정통파 전투신으로 막을 열지만, ‘서부전선 이상있다’고 타전하는 사파 전쟁영화이다. 그 이상함은 가장 현실적인 전쟁이 가장 초현실적인 공포와 퓨전되면서 발생한다. 주인공들을 휘감은 독가스가 실은 안개이듯, 분명한 적은 모호한 공포로 둔갑하는 것이다. 비와 피, 쥐와 시체가 뒤엉켜 질척이는 진흙탕 참호는 관처럼 움푹 팬 형태로 하우스호러의 폐소공간을 이룬다. 전쟁의 공포를 공포와의 전쟁으로 치환한 그럴싸한 아이디어는 이후 공포에 대한 참고문헌 인용으로 이어진다. 정체 모를 <괴물>의 긴장감 속에, <살아난 시체들의 밤>의 좀비가 기습하다가, <식스 센스>류의 트릭을 던지는 식이다. 죽음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치닫는 동족상잔의 비극은 유사한 영국적 터프함으로 가득한 와도 닮아 있다. 퀸이나 셰익스피어 같은 영국 이름의 군인들이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상을 실험해 보이는 <데스워치>는 “신은 죽었어, 우린 혼자야” 같은 실존주의풍 대사를 뱉어내는 탄탄한 실내극 분위기의 전쟁우화이다.

그러나 전쟁과 공포의 긴밀성을 추궁한 장르 접합이 창조성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으르릉거리는 소리 같은 ‘괴물’의 비가시성과 ‘살아난 시체들’의 가시성, 지하세계의 얌전한 ‘디 아더스’ 등은 묘하게 어긋나면서 이 영화만의 무엇을 빼놓은 채 겉돈다. 의 폭도 같은 자기만의 몬스터도 없는 <데스워치>는 ‘전쟁호러’의 참신한 컨셉 안에 끌어들인 호러코드들을 유기적으로 재창조하진 못하며, 자신이 인용하는 영화를 넘어서지도 못하는 듯하다. 암시와 반전은 기교에 그치고, 죽음이나 타자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부재는 전쟁영화의 뻔한 휴머니즘으로 메워질 뿐이다. 그래도 신인감독의 대범한 연출과 배우들의 뻘밭 열연은 소품치고 튼실한 이 영화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특히 발레복 대신 군복을 입은 <빌리 엘리어트>의 제이미 벨은 극한의 인간성 테스트를 통과하는 셰익스피어 역을 통해, 영화 안에서뿐 아니라 배우로서도 성장했음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