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떻게 끝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하지요.”
지난 8월 성황리에 개최된 제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결산 백서를 최근 내놓은 추혜진 SicAF 영화제팀 팀장의 얼굴엔 아쉬움과 시원함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쉴 틈이 없다. 내년 행사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서울시가 10년간 연간 10억원씩 지원하기로 하면서 그녀도 내년에 어떤 감독을, 어떤 작품을 초청할 것인지 벌써부터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해야 한다. 그녀가 애니메이션영화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0년 부천국제대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에 참가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PISAF에 몸담고 있으면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해외 작가 연락은 물론 프로그래밍, 로고 애니메이션 영상스케치 제작, 워크숍 진행, 각종 통역 및 번역 등 각양각색의 일을 맡아왔다.
“많은 작품을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내면으로 스며드는 것 같아요. 브루노 보젯토나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들의 소탈한 면모에 반하는 경우도 많죠. 몸은 힘들지만 그런 것들이 이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 아닌가 해요.”
원래 컴퓨터프로그래머였던 소녀는 움직이는 그림이 좋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애니메이션 일을 배우게 된다. 가슴속에서만 품어오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은 캐나다에서이다. 1996년 어학연수를 위해 갔던 캐나다에서 국내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녀는 한눈에 반했다. 1년여 공부 끝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리던 칼리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공부를 마칠 수는 없었다. ‘IMF 사태’가 주범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남아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도 가끔 하죠. 하지만 귀국해 다시 학교(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1기)에 편입했고 프로그래머로서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요.”
하지만 아주 만족한 것은 아니다. “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다”라는 의식이 문득문득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지난해 말부터 다시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올해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들어간 것도 억지로라도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기최면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 <아우치!>(Ouch!)다. 팝콘 기계 속에서 벌어지는 팝콘들의 이야기를 의인화한 작품.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것이 그녀가 말하는 이 작품의 매력이다. 상상을 뒤엎는 신나는 반전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는 게 그녀가 지금까지 추려낸 결론이다. 2D와 3D를 결합한 3분30초짜리로 올 연말까지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앞으로 큐레이터 업무의 비율을 점점 줄여가려고 해요. 이제 남이 만든 작품은 그만 보고 제 이름으로 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동안 친분을 쌓아놓았던 전세계 중견작가들이 아낌없이 들려둔 조언을 여기에 쏟아부어보겠습니다.”
한달에 한번은 만나는 셰리던 칼리지 출신 동기 6명의 모임도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다들 열심히 자기 작품을 하는 동기들을 보며 그녀는 힘과 당위성을 얻는다. 시간이 많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정형모/ <중앙일보>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