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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김환태 감독
2003-09-29

"양심 가두는 안보논리는 허구"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가는 20대 아들. 어머니는 흐느낀다.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짓는다. “전 괜찮아요.” 한 아이의 아빠가 된 30대 중반의 남성. 종교적 이유로 ‘총을 들지 않아’ 역시 감옥엘 다녀왔다. 그의 네 형제들이 다 그랬다. “내가 겪은 고통을 내 아이가 다시 겪게 될지도 모르죠.” 그의 얼굴엔 여전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종교적 이유로 혹은 정치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 20~30대 젊은 영상제작집단 ‘다큐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김환태(32·사진) 감독이 그들의 이야기를 68분짜리 필름에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이 다큐에서 김씨는 주위의 비난 속에서도 당당히 병역 거부를 선언한 젊은이들과, 같은 이유로 옥고를 치른 뒤 세상에 나온 남성들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그 틈새마다 팽팽히 맞부딪치는 두개의 상반된 목소리를 끼워넣었다. 한쪽에서는 안보논리를 내세워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양심적 병역기피’로 몰아세웠다. 다른 한쪽에선 개인의 양심과 인권이 폭력적 안보 이데올로기로부터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신념과 양심, 그리고 인권을 억누르는 ‘국가안보’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초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다큐이야기’ 제작팀의 한 멤버로부터 2001년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씨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촬영 기간에 그들이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사회 속에서 공존시킬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는 불교도였던 오태양씨 이외에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집총을 거부하다 곤욕을 치른 여러 병역거부자들이 출연한다. 입영 통보를 받기 전 이미 병역거부를 선언한 ‘예비 병역거부자’들도 여럿 출연한다.

지난해 9월 반전·평화의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한 나동혁씨의 조용한 목소리는 그들이 말하는 ‘양심’이 무엇인지 압축해준다. “전쟁과 관련된 어떤 것에도 개입하지 않으렵니다. 이것이 제가 세상에서 배운 것을 세상에 돌려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올해 55살의 정춘국씨는 30여년 전 집총거부로 무려 7년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센 정씨는 ‘국가의 이름으로’ 자신에게 가해진 아픔을 아직 다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렸고, 젊은 예비 병역거부자들은 ‘반전·평화’를 위해 이라크로 떠났다. 다큐멘터리는 끝으로, 지금도 철창에 갇혀 있는 802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이름을 자막 대신 올렸다.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은 지난 25일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첫 발표회를 했다. 김씨는 앞으로 이 작품을 갖고 전국순회 상영회를 열 예정이다.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도 출품할 계획이다.

속편 ‘받들어 총!’의 준비작업도 이미 시작했다. “2편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영화되어 있는지 냉철하게 보여줄 생각입니다. 여전히 국가주의와 군사주의가 국민들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요. 1편이 감정적 접근이었다면 2편에선 ‘아주 재밌는’ 다큐를 만들 겁니다.” 글·사진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