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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금고털이 그린 <이탈리안 잡>
2003-09-26

지적인 유머·짜릿한 액션 한탕에 모조리

영화 속 금고털이범들은 〈오션스 일레븐〉처럼 스타일 좋은 스마트한 작전의 주인공들이거나, 아예 우디 앨런 식으로 헛물만 켜는 멍청한 주인공들(〈스몰타임 크룩스〉), 둘 중의 하나다. 이런 영화들이 갱 영화처럼 비장한 분위기를 풍기기란 힘들다. 대신 영리하건, 멍청하건 금고털이 영화들은 대부분 지적인 유머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탈리안 잡〉의 일당들은 이를테면 앞쪽이다. 여기다 영화는 배신과 복수라는 모티브를 능숙하게 덧댄다. 원작은 1969년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동명의 작품. 배신-복수라는 중심 내용과 자동차 ‘미니’를 등장시킨 정도만 같을 뿐 할리우드 영화다운 빠르고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으로 완전히 옷을 갈아입었다. 금고털이 영화의 머리 쓰기와 갱 영화의 주요 모티브일 법한 배신과 복수에 요즘 구미에 맞는 액션까지 솜씨 좋게 버무린 셈이다.

주인공들은 찰리(마이크 월버그) 일당이다. 작전 리더인 찰리, 부참모 격인 스티브(에드워드 노튼), 컴퓨터 천재 라일(세스 그린), 차량도주 전문가 ‘핸섬 롭’(제이슨 스태텀), 폭발 전문가 ‘짝귀’(모스 데프)는 전설적인 금고털이범 존(도널드 서덜랜드)에게 ‘마지막 한탕’을 하자고 설득해 베니스 작전에 나선다. 3500만달러어치 금괴를 터는 것이다!

대담한 작전으로 금고의 금괴를 털어 베니스 운하를 쏜살같이 헤치며 도망쳐 나왔을 때만 해도 이들은 희희낙락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배신자 스티브의 손에 존이 죽음을 당하고 나머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미국에서 찰리 일당은 아버지 존을 빼닮아 금고따기에는 천재인 스텔라(찰리즈 테론)를 팀에 끌어들여 스티브의 금고 속 금괴를 찾는 ‘복수 작전’에 나선다.

작전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베니스에서 금고를 털 때부터 마지막 복수까지 어찌 보면 ‘무대포’ 방법이지만 그렇기에 더 허를 찌른다. (힌트는 금고를 ‘통째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6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져 대히트를 친 클래식 자동차 ‘미니’의 활약은 볼거리다. 라일의 능력으로 온 로스앤젤레스의 신호체계를 마비시키며 깜찍한 자동차 석대가 바로 머리 위에서 자신들을 쫓는 헬리콥터를 피해 지하철 계단을, 지하도를 달리는 장면들은 짜릿하다. ‘잡’은 속어로 도둑질, 강도질을 뜻한다. 베니스에서의 한탕(이탈리안 잡)과 같은 방법으로 멋지게 스티브에 한방을 먹이는 찰리 일당의 영화에 딱 맞는 제목인 셈이다.

〈이탈리안 잡〉은 패거리가 등장하지만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부각되는 영화다. 리더인 찰리는 영리하면서도 장난기 있는 인물. 라일은 대학 시절 ‘낮잠’(냅)을 자고 있는 동안 친구가 자신의 기술을 훔쳐 ‘냅스터’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친구이며, 말 한마디로 여자를 유혹하는 핸섬 롭, 어린 시절 폭발 장난으로 한쪽 청력을 잃은 짝귀까지 흥미로운 성격의 주인공들에 고루 눈길이 간다. 근성있는 눈매 안에 인간의 이중적인 욕망을 담는 데 뛰어났던 에드워드 노튼이 평면적인 악당으로 나오는 건 유감이다.

돌아서는 순간 잊혀지지만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딴생각 안 나는 깔끔한 오락 액션. 하긴 이런 정도도 쉽게 만나기 힘든 요즘이다. 〈네고시에이터〉의 F. 게리 그레이 감독. 10월3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 UIP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