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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는 어떤 영화?
2003-09-26

유쾌 상쾌 통쾌한 '열녀문 열기' 게임

18세기 말 정조 때 한양. 조씨 부인(이미숙)과 조원(배용준)은 사촌 사이다. 서로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첫사랑의 상대이기도 하다. 둘 다 교양과 품위를 갖춘 양반사회의 일원이지만 정절이나 사랑 따위의 가치를 무시하면서 게임처럼 다른 이성들을 유혹하는 ‘선수’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조씨 부인은, 소실을 들이자는 남편의 제안에 동의한다. 그리곤 조원을 불러 16살짜리 소실을 범해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일찍 부인을 여읜 뒤, 혼자 살면서 뭇 여인에 탐닉하고 시서화를 즐기는 한량인 조원은 “너무 쉬운 상대는 내 명성에 걸맞지 않다”며 조씨 부인의 부탁을 거절한다. 대신 열녀문을 하사받은 과부 숙부인(전도연)이 지금 자신의 사냥감임을 밝힌다. 조씨 부인은 그 자리에서 내기를 건다. 조원이 숙부인을 무너뜨리면 자기의 몸을 주겠다고.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18세기말 출간된 프랑스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시대배경은 그대로 두고 공간만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사회로 옮겨 각색한 사극이다. 이 소설은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 밀로시 포르만의 〈발몽〉 등 외국에서 이미 네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영화팬들에게는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통속적이면서 사랑의 통속적 정의를 깨는 이 이야기는 몇 번 봐도 흥미로울 수 있다. 소설이 다루는 사랑에 내재한 권력관계, 사랑과 게임의 모호한 경계선 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구에 회자되는 것들이다.

〈스캔들 …〉은 원작의 재미와 맛깔스런 대사를, 200여년 전 조선이라는 배경에 크게 거스르지 않게 각색해 살려낸다. 조씨 부인과 조원의 방탕한 게임이 의외로 웃음을 자아내고, 정성스럽게 재현된 소품과 세트, 의상, 음식들은 충분한 눈요깃감이 됨과 아울러 당시 양반층의 생활상을 읽게 해주는 요긴한 단서가 된다. 남녀교제를 금했던, 특히 여자의 성을 극도로 억압했던 그 시대이고 보면 조씨 부인과 조원의 게임에는 통쾌한 구석도 있다.(원작에서 숙부인은 유부녀지만, 영화에서 숙부인은 남편을 보지도 못하고 사별한 뒤에 27년간 처녀로 살아왔다.) 영화에 처음 출연한 배용준은 한량 기질과 사대부다운 단호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호연을 펼친다. 후반부에, 조원과 조씨 부인의 게임이 비극으로 돌아서면서 분위기가 급변하는 듯한 느낌이 있고 조씨 부인의 캐릭터가 덜 설명된 듯한 아쉬움이 있지만, 어찌 보면 시대를 조롱하며 앞서간 인물들이기도 한 조원과 조씨 부인에게 연민을 보내는 결말도 단아하다. 임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