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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영화에서 할리우드 미래를 보다
2003-09-23

195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관심과 향수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시카고>(사진)를 계기로 40~50년대에 절정기에 이른 뮤지컬이 부활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역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은 50년대 멜로드라마의 명감독 더글러스 서크에 오마주를 바친 영화로 인종차별이 심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백안시가 팽배했던 50년대를 사는 한 상류층 주부의 고뇌를 담아냈다. 여주인공 줄리언 무어는 <디 아워스>에서도 성적 정체성에 흔들리고 답답한 일상에 갇힌 50년대 주부의 역할을 소화해냈다.

50년대를 되돌아보는 일은 단지 영화의 내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이곳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대로에 자리한 아메리칸 시네마테크에선 사상 최대의 3-D 엑스포영화제가 영화팬들의 많은 관심 속에 열렸다. 9월12일부터 21일까지 열흘간 열린 이번 영화제에서는 50년대에 상영됐던 33편의 장편 3-D 영화와 21편의 단편들이 상영됐다. <하우스 오브 왁스>, <키스 미 케이트>, <다이얼 M을 돌려라> 등 유명한 영화들은 일찌감치 매진사태를 빚어 50년대의 ‘구경거리’ 영화에 대한 요즘 관객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그런가 하면 같은 할리우드 대로에 자리한 아크라이트 시네마돔 극장에선 9월12일부터 25일까지 존 포드의 1962년작 서부영화 <서부 개척사> (원제 How West Was Won)가 오리지널 시네라마 포맷으로 상영되고 있다. 시네라마는 세 대의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세 대의 영사기로 각각의 필름을 이어 대형 스크린에 투사하는 방식의 영화. 한 대의 카메라는 정면에서, 두 대는 좌우 측면에서 같은 대상물을 촬영한 후 165도로 굽은 곡선형의 대형 스크린에 영사해 관중을 압도한다. <서부 개척사>는 내용 또한 시네라마에 걸맞게 스펙터클한 서사극으로 꾸며져 더욱 장관을 연출했다.

폴라로이드 입체안경을 쓰고 관람해야 하는 3-D 입체영화는 각각 오른쪽 왼쪽 장면에만 초점을 맞추게 해 3차원적인 시각적 환영을 연출하는 것으로 한 쪽 눈이 실명인 사람에겐 효과가 없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이번 영화제에서 일찌감치 매진된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의 <하우스 오브 왁스>의 앙드레 드 토스 감독이 한쪽 눈 장님이었던 것. 입체영화를 볼 수는 없었지만 어떤 카메라맨들보다도 원근법과 프레임 잡기 등에 능해 걸작 입체영화 한 편을 남겼다. 또한 50년대는 할리우드에서의 검열도 조금 느슨해지던 틈이라 제인 러셀, 마릴린 먼로 등 풍만한 가슴을 내세운 육감적인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던 시기. 마지막 날 상영된 제인 러셀 주연의 <프렌치 라인> (French Line)은 “입체로 보는 제인 러셀” “제인 러셀이 당신한테 다가옵니다” 등의 문구로 관객들을 유혹했다.

이처럼 50년대에 입체영화, 시네라마, 시네마스코프 등 와이드 스크린 기법이 등장하고 황금기를 이룬 것은 당시 처음 등장한 TV가 극장의 관객들을 빼앗아갔기 때문이었다. TV와 뭔가 다른 것을 제공해 관객들을 붙잡기 위해 빅스크린이 제공할 수 있는 스펙터클에 신경을 집중한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스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스펙터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할리우드가 입체영화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테마파크나 짧은 아이맥스 필름 등에 그치고 있다. 이번 영화제는 그러한 할리우드가 과거를 돌아보는 동시에 미래를 생각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로스앤젤레스/이남·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