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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도 무대의 일부인 듯,연극 <한여름밤의 꿈>
김현정 2003-09-18

<한여름밤의 꿈> 무대는 텅 비어 있다. 나뭇잎 사이에 요정이 몸을 숨기는 오래된 나무도 없고, 요정의 왕과 여왕이 부딪치는 화려한 궁전도 없다. 생나무 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틀 몇개와 광목천, 악사들을 위한 조그만 자리가 전부다. 극단 여행자가 2002년에 처음 무대에 올린 <한여름밤의 꿈>은 한껏 비워낸 이 무대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인물과 그들의 관계만 남겨놓은 채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여백을 채우는 건 전혀 우아하지 않고 솔직한 대사와 온몸으로 무대를 휘젓는 배우들, 동양적인 리듬, 부담없는 춤과 노래다. 도깨비불이 객석의 어둠을 타고 내려오는 처음부터 <한여름밤의 꿈>은 자신이 고전의 사생아에 불과하진 않으리라고 자신있게 선포한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한여름밤의 꿈>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 사랑하는 벽과 항은 벽의 결혼식 전날 숲속으로 야반도주하고, 벽의 정혼자 루와 루를 짝사랑하는 익이 그뒤를 쫓는다. 그 숲은 돗가비(도깨비) 무리가 살고 있는 터전. 우두머리 돗은 밤마다 여자를 찾아나서는 바람둥이 남편 가비를 혼내주기 위해 두 마리 두두리에게 사랑의 묘약인 은방울 독초를 따오라고 지시한다. 그 순간부터 한여름밤 깊은 숲속에서 요란한 소동이 일어나게 된다. 극본까지 직접 쓴 서른여섯의 젊은 연출가 양정웅은 원작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대담한 각색을 시도했다. 네 청춘남녀의 이름을 28수 별자리에서 따오거나 하늘거리는 요정을 걸쭉한 입담의 돗가비로 바꾼 것은 얼핏 부담스러울 수 있었던 시도. 그러나 <한여름밤의 꿈>은 단순히 우리 옛것에 대한 애착이라고만 한정할 수 없는 넓은 품을 지녔다. 가늘고 높으며 끝부분을 올리는 돗가비의 말투는 경극을 떠올리게 하며, 네 젊은이의 대화는 현대극과 시대극이라는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대사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유머, 몸을 꼭 붙이고 한 마리처럼 행동하는 두 마리 두두리의 익살, 눈과 입술을 강조한 분장에 힘입어 더욱 다채로워 보이는 표정, 굳이 동양의 정취만을 고집하지 않는 자유로운 춤은 조금 산만하기도 한 대본의 틈을 메워주는 귀여운 접착제다.

어느 예술에서나 형식적인 실험은 대부분 대중을 멀리 쫓아내는 효험이 있다. 그러나 <한여름밤의 꿈>은 마당극이나 연극, 뮤지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형식을 창조하면서도 객석을 무대로 당겨오는 듯 사랑스러운 리듬을 탄다. 배우가 객석을 향해 말을 거는 것은 낯선 모습이 아니지만, <한여름밤의 꿈>은 관객 스스로 목소리를 내 대답하고 싶어지는 것. 배우들은 자신이 연기하는 부분이 끝나면 뒷부분 악사 자리로 물러나 박자를 맞추기 때문에 끊임없이 같은 무대에서 호흡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돗가비들이 나무처럼 네 젊은이 주위를 둘러싸고 장난을 치는 장면 역시 배우들의 신체만으로 무대에 활기를 부여하는 인상적인 대목. 9월5일 학전블루에서 공연을 마친 <한여름밤의 꿈>은 9월27일과 28일 과천 마당극 축제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김현정 para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