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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할리우드판 트로이목마?
2003-09-16

“외국 자본으로 운영되는 영화제작사가 프랑스 정부의 영화지원제도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올가을은 자존심 강한 프랑스 영화계와 할리우드의 신경전과 함께 시작되는 듯하다. 자국 영화산업 수호를 둘러싼 논란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 주인공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극장가에 ‘아멜리에’ 열풍을 일으킨 장 피에르 주네 감독(사진)의 새 영화 〈약혼시절의 어느 긴 일요일〉이다.

지난 8월 말부터 촬영에 들어간 이 영화는 192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죽음을 믿지 않는 소녀의 따뜻한 이야기를 다룬 세바스티앵 자프리소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4500만 유로라는 엄청난 예산으로 기획된 대규모 프로젝트다. 여기에 〈아멜리에〉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드리 토투가 최근 영국까지 진출해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더럽고 예쁜 것들〉에 출연한 이후 다시 한번 주네 감독과 호흡을 맞추는 영화인 만큼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왔다.

〈약혼 시절의…〉가 프랑스 영화제작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 것은, 제작사인 2003 프로덕션이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 워너의 자회사라는 점 때문이다. 고몽, MK2 등 주요 제작자들을 비롯한 프로덕션 조합들은 “유럽 외 지역의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에는 CNC(국립영화자문기구)의 사전제작비 지원 및 프랑스 TV 채널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한 승인을 주어선 안 된다”며 만일 CNC가 승인 허가를 내줄 경우 행정처분 소송을 요구하겠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이에 대해 주네 감독과 제작사는 “CNC의 승인을 받지 못할 경우, 다른 나라에서 제작을 하거나 촬영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고 대응하고 있다.

워너가 프랑스에 있는 자회사 2003 프로덕션을 통로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대규모 영화 인력 고용 등 여러가지 이점을 창출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침체를 겪고 있는 프랑스 기술 제작 부문이 다소 활력을 얻을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에 CNC는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영화의 시장점유율이 80%를 웃도는 유럽국가들 중에서 프랑스는 60% 정도에 머무는 유일한 나라다. 프랑스의 제작자들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자본이 프랑스 영화제작에 침범하는 것을 ‘트로이의 목마’에 비유한다. 자국 영화산업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와 위기감 속에서 이들은 지금 ‘미국 자본과 프랑스 영화의 약혼’을 막기 위해 기나긴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파리/여금미·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