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드 선장(패트릭 스튜어트)은 엔터프라이즈호를 이끌고 로물루스 행성의 새로운 집정관 신존(톰 하디)을 만나러 간다. 베일에 싸인 인물인 신존이 은하 연방에 만남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신존을 만난 피카드는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신존은 로물루스의 옛 정권이 첩자로 활용하고자 만든 피카드의 복제인간이었던 것. 이제 권력을 쥔 신존은 자신을 이용했던 인간들에게 복수를 선포한다.

<네메시스>는 1966년 TV시리즈로 시작된 <스타트렉>의 열 번째 극장용 영화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엔터프라이즈호의 선장은 커크에서 피카드로 바뀌었고, 승무원들도 한 세대를 넘어 ‘넥스트 제너레이션’으로 멤버를 교체했다. 한때 은하계의 개척자였던 엔터프라이즈호가 이젠 시대에 뒤처진 고물로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수많은 TV영화와 비디오영화, <엔터프라이즈> 등의 외전 시리즈를 양산해온 <스타트렉>은 21세기를 맞은 다음에도 자신의 저력이 유효할 거라고 굳게 믿은 듯하다. ‘고철덩어리 엔터프라이즈호’ 같은 자학에 가까운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네메시스>는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만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다.

<스타트렉>은 애초에 <스타워즈>보다 소박하고 친근한 시리즈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드라마와 각기 제몫을 해내는 승무원들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메시스>는 단점만 기억하고 장점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고지식하지만 항상 존재에 대한 의문을 일깨우던 안드로이드 데이타, 신비한 능력과 현명한 지혜를 가진 디에나, 활기있는 부함장 라이커는 그저 지금까지 출연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출연한다는 듯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피카드 선장조차도 자신이 주도하는 이 시리즈에서 소외당한다. 피카드는 자신의 복제인간과 대면하고, 그와 단둘이 전투를 벌이며,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까지 던진다. 또다시 고비를 넘어야 할 장수 시리즈로서는 적절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마지못한 체면치레에 가깝다. 설정만 있고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반평생을 <스타트렉>과 함께했지만, 이젠 연료가 다 됐다는 걸 인정해야겠다”고 한탄했다. <네메시스>가 <스타트렉>과의 영원한 작별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